들리는 말들이 심상치 않아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휴지까지 두둑하게 준비하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중반 이후부터 끝장면까지 눈물이 멈추질 않더군.
영조도 울고 사도도 울고 세손도 울고 나도 울고...아무리 틀어막아도 슬픔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와 꺼이꺼이 꺽꺽...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찌르는 일이 결코 드문 시대가 아님에도, 아들을 죽이는 과정이 하루하루 세세하게 그려져서인지,
눈앞에서 '패륜'을 직접 목격하는 일이 감정적으로 참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달까.

대치동, 목동, 중계동, 제주 일도동...강남이 어디 서울뿐이랴. '너 잘 되라고'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뒤주 놀음이 하루 이틀 일이랴.
웬만한 현대극에 등장하는 강남 엄마들보다 더욱 더 현실적으로 징글징글한 극성 아빠, 영조.
송강호는 이제 연기 대통령, 연기의 신 이런 정도의 꾸밈어 따위는 집어치운, 그냥 귀신이더라. 연기하다 죽은 귀신.
결말 부분, 죽은 아들을 확인하러 돌계단을 한 단 한 단 힘겹게 내려오며 읊조리던 독백 장면은 영조 귀신이 씌었구나 싶을 정도였다.
클라이막스 부분의 '삑사리'마저도 철저하게 계산된 것 같은, 무시무시한 내공. 그야말로 소름 쫙.
노래를 듣거나 공연을 볼 때, 몇 년에 한 번씩 '접신'하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밥 딜런 공연에서 그랬고, 얼마 전 이진아의 노래가 그러더니 송강호의 그 돌계단 연기에서 또 한 번 정신 몽롱해지는 접신 경험.

유아인의 연기 또한 익히 들리던 대로 귀신 씌인 송강호에 결코 뒤지지 않았고,
참으로 똑똑하고 영악하게, 그리하여 비장하고 아름답게 사도의 몫을 충실히 해냈다.
타고난 기질이 그래서일까, '베테랑'의 조태오같은 센 척하고 싸가지 없는 역보다는, '밀회'의 선재나 사도 같이 여리고 약하고 안쓰러운 역할에 딱이다, 딱.
눈빛 하나에 미친놈과 불쌍한 놈을 동시에 담을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대 배우의 자질이 아닌가.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사도를 두고 '비극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특히 강조했던데,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이 그거였다.
더럽게 끔찍하고 더럽게 치졸한 비극이지만, 감정의 바닥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끝내 밑바닥을 보고 말았기에,
그 자체로 품격이 완성되었다는 느낌.

구구절절 주저리주저리 읊어봐야 다 필요없고, 아이를 낳을 거라면 다른 거 다 데쳐두고 그저 사랑만, 사랑으로만 키울지어다.

2015 최고의 영화를, '인사이드 아웃'이 '사도'에게 물려줘도 될 듯하다.
인간을 다룬 예술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감정과 정서'라는 것을, 두 작품에서 새삼 깨닫는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 보러 갔다가 이게 웬 횡재?
무대인사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배우들 봤당.
배우 황정민-장윤주-정만식-류승완 감독.

 

황배우는 상당히 마르고 왜소하고
장모델은 화면과 그대로고
정배우는 부리부리한 이목구비
정작 감독이 제일 잘 생겨 보인다는 게 함정. ㅎ

빵 터진 장윤주.

장윤주가 제일 신나함. 첫 영화라 모든 게 신기할 테지. 더군다나 이리 잘 되니 절로 웃음이 날 밖에.

시종일관 아빠 미소 흐뭇하게 짓고 있는 황배우.

음, 정작 영화는 어땠냐면...<부당거래>+<짝패> 느낌.
천만까지 들 정도는...ㅎ
그만큼 국민들 속이 답답하다는 얘기겠지. 시류 잘 탄 영화.
거기에 약 빨고 달려든 유아인의 또라이 연기!

(영등포 CGV / 2015년 8월 / 아이폰6)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딸년이 대통령까지 하는 마당에
또 다른 친일파 자식놈이 다음 대통령 해먹겠다고 설레발 치고 다니는 게 뭐 대수겠냐만,
그래도 그 꼴은 더 이상 안 보고 싶은 게 제대로 된 사람 아니겠는가. 적어도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민족주의를 싫어하다 못해 경멸하던 시절도 있었지만(지금도 여전히 민족주의는 선보다 악에 가깝다고 믿지만),
가끔씩 사무치게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독립군 때려잡던 일본군 딸년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살다 보니, 저절로 '민족'이란 무엇인가 예전보다 자주, 곱씹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했던 영화.
미흡한 이야기 전개라든가 손쉬운 쌍둥이 설정이라든가 이런저런 영화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하고 어두웠던 '역사'를 죽음으로 견뎌낸 이들이 실존했기에 그 자체로 먹먹했던 영화.

 

배우에 이렇게 빠진 게 얼마만인지.
게다가 국내 배우도 아닌 일본 배우에!
그 잘나셨다는 일드의 제왕 기무타쿠 보면서도 '저 남자 참 잘생겼네!' 정도의 두근거림만 유지했을 뿐인데,
연하도 아닌, 마흔 넘은 배우를 보며 이토록 심장이 쿵쿵 뛰다니!
(이건 마치...연애 시작 전 첫눈에 반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 @@)

시작은 <리갈하이>였다. 그냥 재미있는 일드를 검색했는데 추천이 많이 나오길래, 아무 생각 없이 보면서 "저 어깨 좁고 깡마르고 웃기게 생긴 배우 누구지? 근데 연기 참 잘하네."
근데, 근데 이상해. 두근거려! 코미카도 켄스케의 그 우스꽝스러운 2:8 가르마에 방정촐싹맞은 궁둥이가 자꾸...설레!

그리고 어느새 몇날 며칠 날밤 새며 사카이 마사토의 드라마와 영화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
<오오쿠-탄생>, <오오쿠-영원>, <한자와 나오키>, <리갈하이 1, 2>, <비밀의 화원>, <아츠히메>, <쯔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무사의 가계부>, <남극의 셰프>, <그밤의 사무라이>, <열쇠 도둑의 메소드 연기>...그리고 2015 새 드라마 <닥터 린타로>까지...

특유의 ‘우는지 웃는지 모르는’ 모호한 표정, 남자배우로서는 좀 얇아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리고 작은 키에 왜소한 몸.
분명 배우로서 약점이 많은 신체 조건. 분명 다른 배우들에게는 약점이었을 이 모든 것들이, 이 사람에게는 약점이 아니야.
사카이 마사토라는 남자에게 한 데 모여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사카이 마사토만의 표정과 분위기와 연기를 만들어내고 있어.
기무라 타쿠야가 외모와 스타일에서 일본인들의 서구 지향을 대표해왔다면, 사카이 마사토는 현 시점에서 일본인들에게 말이 필요 없는 친숙함을 안겨주는 가장 일본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초식남 계열에 가까워보이는 부드럽고 친절하고 선한 이미지, 자신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고 뒤로 한 발 물러서 있는 듯한 겸손함과 조심스러움, 절대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는 듯한 나긋나긋함.
내가 세운 ‘일본적’이라는 것의 편견.

그러나 부드러움과 친절함, 따뜻함이라는 한 꺼풀을 벗기고 난 뒤 그에게서 보이는 것은
언뜻 언뜻 느껴지는 섬세한 신경질, 따뜻한 웃음 뒤에 숨은 일말의 불안함, 본성은 선하나 결코 쉽게 곁을 주지 않고, 냉혹하리만치 스스로에게 엄격할 것 같은 까다로움. 이런 것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남자’의 성질들을 다 갖췄잖아, 사카이 마사토 상.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사카이 마사토의 ‘본질’에 가까운 느낌이 든달까...)

 




오랜만의 영화 시사회 당첨.
충무로 대한극장 나들이.
나보다도 애 키우고 일하느라 영화관 구경한지 5년도 넘었다는 친구에게 더 좋은 시간이었던 듯해 기분 좋더군.
원제가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인데, 영화 속 사정을 알게 되면 그야말로 더 없이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 마디로 재미있는 영화. 정말 많이 웃었고, 유쾌했음.

프랑스의 '이민자' 문제가 극우파의 대표적인 표구걸 미끼임을 감안할 때, 조금 더 정치적이고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으나, 장르는 코미디임을 잊지 말자.
이민자, 국제결혼, 인종간 교배(?) 등 다양한 논란들을 적당히 건드리고 적당히 무마하며 되도록 좋고 밝게 그려
결국 '화합하는 프랑스'라는 아름다운 결론에 이름.

우야든동

1. 역시 프랑스 코미디!
2. 역시 프랑스 여자들! (프랑스 여자의 그 오묘하게 아름다운 분위기는 정말...)
3. 역시 다시 가고 싶은 프랑스! ㅜㅜ

 

 

오랜만의 예술의 전당 나들이. 연극 <햄릿> 보다.
사실 갈 때만 해도 누구나 다 아는(사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햄릿'에 그다지 큰 기대가 없었던 것이 사실. 책을 읽었고, 연극도 보고 영화까지 봤(멜 깁슨 주연! 대체 왜 본 거지? @@)으니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정형화된 햄릿이 꽉 들어차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완전 깜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햄릿, 정말 새롭고 신선한 햄릿이었음. 연극 속 연극이라는 액자 형식이라니! 진지함과 웃음, 슬픔과 낄낄거림이 공존하는 무대여서 1시간30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더군. 고전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플롯을 만들어낸 극작가, 연출가는 아마도 천재일 듯! 플롯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 같이 간 친구와 보고 나오는 내내 재미있다! 새롭다! 감탄 또 감탄. 그래, 연극은 참 좋은 것이었어. 난 원래 연극을 참 좋아했어. 연극, 좋다!!! ><

 


자유소극장 3층에서 내려다본 극장의 모습. 묘한 매력.

 


켐벨 역의 서현우 씨. 간만에 보는, 인물을 가지고 노는 타고난 연기! 사라 역의 서지유 씨, 무당과 마녀를 연상케하는 신들린 연기! 상대적으로 주인공 햄릿 역이 참 약했는데, 젊고 어설프고 치기어린(게다가 정신까지 살짝 나간) 햄릿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연기 못하는 배우를 골랐나...싶은?

(예술의 전당 / 2014년 8월 / 아이폰4S)

슬프고 먹먹하겠지만,

꼭 가야지.

잊지 않기 위해서.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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