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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영혼의양식/볼거리 (90)
음풍농월, 짧고 긴 여행 이야기
남편과 나는 고양이 덕후다. 나는 고양이 위탁 경험이 두 차례 있고(한두 달씩), 남편은 대학생 때 유기고양이 한 마리를 모신 적이 있는 찐 집사 출신. 고양이를 기르는 5년 동안 남편은 지독한 천식 환자였다. 매일 매일 심한 기침과 재채기, 심할 때는 호흡 곤란까지 달고 살았는데, 그것이 그냥 천식이 아니라 심각한 고양이 알레르기라는 것을, 고양이가 무지개별로 떠난 뒤 알았지 뭔가. ㅠㅠ 하여 우리는 고양이 덕후이자 랜선 집사다. 그림의 떡 보듯 매일 매일 남의 고양이들을 보며 침만 꼴딱꼴딱 삼키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말, ‘나만 없어 고양이.’를 되뇌며. 넋 나간 표정으로 고양이 채널에 머리 박고 있는 마누라가 불쌍해 보이는지 남편이 가끔 “고양이 키울까요?” 묻지만, 아서라 말어라. 고..
2001년 여름, 세 여자가 2박 3일 동안 공주-부여-익산을 여행했다. 영험한 계룡산 안개 속을 오르고, 궁남지에서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백마강에서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셨다. 이른바 ‘세 여자의 고주망태 백제 기행’. 마지막에 들른 곳이 바로 미륵사터. 도시를 바꿔 가며 진탕 노느라 기운이 빠진 탓도 있을 테지만, 국사책에서만 보던 미륵사지를 실물 영접한 순간의 그 장엄함에 모두 말문이 막혔더랬다.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데다 시멘트를 덕지덕지 처발라 안타깝게 뒤틀린 돌덩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무너진 돌탑 너머로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 백제의 정신을 목격해버리고 만 세 여자는 약속한다. 10년 뒤 미륵사지에 꼭 다시 오자고. 하지만 늘 그렇듯 10년의 약속은 흐지부지 잊혔고, 그..
다녀온 뒤 계속 생각나는 이응노 미술관. 미술품 자체도 궁금하지만 미술관이라면 모름지기 생김새부터 아름다워야 한다. 이나 처럼 고집과 개성이 있어야지. 암. 그런 면에서 이응노 미술관, 참 좋았다. 차분하고 단정하고 점잖은 느낌. 이런 거 너무 좋아. ㅠㅠ 주변 경관을 소담하게 품은 따뜻함. 아 좋다. 들어가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에 쏙 들어버린 미술관. 첫눈에 반한 느낌. 전시장도 복닥복닥하지 않고 여유 있게 꾸며 놓았다. 많이 비우고 적당히 채워 더 멋진 공간. 고암의 작품들. 안도 밖도 참 예쁜 미술관. 실물로 만나는 묵직한 감동. 이런 곳에서 살며 글을 쓰면 참 좋겠구나. 오묘해서 눈길 가는 곳. 특히 마음에 들었던 타피스트리. 요것도. 다 보고 나오니 또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네. 건축 구경..
1년 전 여름 고양, 세종, 제주 사는 여자 셋이 급 떠난 군산 여행. (비둘기호 타고 방학마다 오가던 외가 군산, 떠올리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생각에 눈물 나는 군산, 이제는 아무도 남지 않은 내 사랑 군산. 여행자의 눈으로 군산을 다시 보니 구석구석 또 새롭더라.) 몇 해 전에 이은 두 번째 군산 여행에서 특히 좋았던 곳, 군산 근대건축관. *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군산 근대건축관) 이 건물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 與資平)가 설계하여 1922년에 신축한 은행건물로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면서 군산과 강경의 상권을 장악하는데 초석을 쌓아, 일제강점기 침탈적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표..
명불허전. 한 마디로 명작. 내 마음 속 아카데미 작품상은 이 작품인 것으로. 오랜만이네. 부박한 스토리와 현란한 연출 기법으로 버티는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인간의 ‘감정’을 묻고 묻고 또 묻는 이런 집요한 영화 같으니. 결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가 있건 없건, 결혼생활 유지 중이건 이혼한 상태건 비혼을 결심했건, 어떤 누구라도 어떤 형태로든 마음을 건드려주는 영화. 사랑이 뭘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함께 삶을 꾸려가고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관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영화. 영화 내내 훌쩍거린 순간들이 있었지만, 막힌 둑이 터지듯 눈물이 쏟아진 건 마지막, 아담 드라이브가 노래 부르는 장면이었다. 담담한 목..
별거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곳. ㅋ 사실 ‘선사유적지’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닌가 싶어 살짝 당황했으나, 가볍게 산책 삼아 돌아보는 수준으로는… (둔산선사유적지 / 2020년 1월 / 아이폰XR)
계속 와보고 싶었고, 드디어 왔으나 코로나 때문에 전시장이 온전히 문을 열지 않은 상태였다. 아쉬운대로 둘러본 전주 . 다음에 온전한 상태로 다시 올 수 있기를. 그리하여 더 많은 그림과 더 많은 조각을 만날 수 있기를. (전주 팔복예술공장 / 2020년 5월 / 아이폰XR)
김래원의 작품을 못 보던 시절이 꽤 길었다. 에서 요즘 말로 '입덕'해버려서 몇 년을 허우적댔지. 입덕 중에는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왜냐고? 래원이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었거든. 부끄럽거든. 민망하거든. 자식 학예회에 내보낸 부모 심정이랄까, 배우 남편을 둔 아내의 심정이랄까... @@ (지금은 서현진의 작품을 못 본다. 이 화근. 하필이면 가장 좋아하는 배우의 작품을 볼 수 없는 이 병은 대체 무슨 불치병이란 말인가!!! 꺼이꺼이.) 여튼 공효진이야 뭐 늘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고 김래원도 자연스럽게 탈덕해버려서, 맘 편히 보러 갔는데... 1. 아쉽다. 많이 아쉽다. 스토리든, 감정이든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닌데. 훨씬 더 밀어붙일 여지가 남았고 그래야 했는데, 어정쩡하게 끝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