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 올해 무려! 101권을 달성하긴 했으나 그림책 많음, 어려운 책 적음. @@ 살짝 변명해보자면 봄 여름엔 잇따라 간병하느라 책에 나눌 정신이 없었고, 제대로 책 좀 읽어볼까 싶었던 12월에는 난데 없는 계엄 이 지랄! — —^
그래도 내 맘대로 뽑았다! <2024 손꼽 10권>
- 끝내주는 인생(이슬아)
- 어둠의 속도(엘리자베스 문)
-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무루)
- 엉덩이즘(헤더 라드케)
- 긴긴밤(루리)
-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 제철행복(김신지)
-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 / 시드니 스미스 그림)
- 상황과 이야기(비비언 고닉)
- 찬란한 멸종(이정모)
1.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노라 에프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각본가이자 할리우드에서 드물게 성공한 여성 감독의 에세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늙어감, 세상에서 잊히는 서글픔, 이혼과 인생의 좌절을 받아들이고 물처럼 흘려보내는 마음”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평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언니의 지혜로운 통찰을 기대… 했지만, 기대에 못 미쳐 아쉽. 시대(1941년생)와 동/서양 문화 차이의 이질감도 한 몫 한 듯.
책꼽문 : 이혼의 장점이라면, 때떄로 그 다음 남편에게 훨씬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분노를 쏟을 대상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함께 사는 사람에게로 분노가 향하지 않는다. 또 다른 장점이라면, 결혼 생활 때문에 모호해졌던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바로 사람은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밤중에 일어나서 한바탕 벌이는 권력 투쟁 같은 건 없다. 모든 것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2. 노가다 가라사대(송주홍)
젊은 ‘노가다’꾼이 풀어낸 노가다 현장, 노가다 사람 이야기. 대체로 가볍고 가끔 울컥.
책꼽문 :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책임지지 않는 삶이란 불가능하다는 걸 말이다. 다만 한 걸음이라도 걸으면 벌써 발자국이 남고 손끝만 스쳐도 지문이 남는 게 인생일진대, 책임지지 않는 삶이라는 게 도대체가 가당키나 한 걸까? 그런 삶이 가능하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었던 걸까?
3.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입니다(패트릭 브링리)
말소리는 조용조용, 발걸음은 조심조심, 호기심과 설렘으로 이 경비원을 따라 미술관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니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문 닫을 시간이니 집에 가라고, 메트는 그대로일 테니 아쉬워 말라고.
책꼽문 :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비록 뛰어난 실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가 존경하는 음악인의 양대 산맥인 바흐와 듀크 엘링턴의 음악을 다소 불안정할지언정 수줍어하지 않고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하는 내내 음악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예술가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은 분명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책꼽문 :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4. 끝내주는 인생(이슬아)
문장마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라니까.’를 내뱉으며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리다 피멍 한가득. 더럽게 잘 쓰네, 흥!
책꼽문 : 내게 반해버린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남의 힘을 빌려서 겨우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런 구원이 좋은 연애에서는 일어난다.
책꼽문 : 달리기가 잘 되는 날에는 누가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 그게 누구냐면 지난 며칠간 꾸준히 달려놓은 과거의 나다. 그런 날들이 쌓였을 땐 몸이 마음을 거뜬하게 이끌고 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달리는 날에는 마음이 몸을 이끌어야 한다. 몸이 안 따라줘도 마음의 힘으로 살살 달래며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
5.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 투쟁>이라는, 생애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탁월한 역작을 이미 써버려서일까. 영국인 노동자 남푠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를 통해 영국 노동자 계급의 현실을 보여주고팠던 모양이나 너무 친근하고 사적인 나머지 시시콜콜하게 읽히는 아쉬움. 미카코 언니는 영국 꼰대 아재들을 안타까워하고, 나는 한심해하고. ㅋ 아재들! 맥주 그만 퍼마시고 정신 좀 챙기쇼! 중늙어 술 너무 마시면 윤석열처럼 된다니까?
6. 시민의 불복종(헨리 데이비드 소로)
드디어 읽다. 와, 이 늙은 미국 아재 패기 보소!
책꼽문 : 오늘날 이 미국 정부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자세일까? 나는 대답한다. 수치감 없이는 이 정부와 관계를 가질 수 없노라고 말이다. 나는 노예의 정부이기도 한 이 정치적 조직을 나의 정부로 단 한순간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혁명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너무나 커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정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권리 말이다.
7. 에이징 솔로(김희경)
비혼 백세 시대, ‘홀로 나이듦’에 대한 진지한 연구.
책꼽문 : 각각의 친구는 우리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끄집어낸다. 다양한 친구 그룹과 함께하면서 골프를 사랑하는 자신의 이런 면, 꽃을 사랑하는 저런 면 등 다양한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당신의 정체성이 위축되고, 당신 스스로 당신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유형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8.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임성순)
오토바이로 달리는 유럽 여행기. (너무 일찍 활자 중독에 빠지면 나타나는 같잖은 부작용 중 하나, 모국어보다 외래어가 먼저 떠오른다는 것. 특히 페이소스라든가 멜랑꼴리라든가 하는 있어 보이는 단어들…) 이 책에는 페이소스가 있네.
책꼽문 :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도 황혼은 아름답더군요. 그게 위로가 되는 동시에 슬펐습니다.
9. 12월의 어느 날(조지 실버)
엇갈림과 애틋함, 설렘과 두근거림의 공식! 잘 쓰인 로맨스 소설.
10. 젊은 부인과 두 구의 시체(윌리엄 월러스 메이저)
제목이 다했나 봐. 내용이 기억 안… @@
11. 도시인의 월든(박혜윤)
미국 숲속에 ‘일부러’ 고립돼 사는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 놀랍고 대단하다. 이런 이들을 볼 때면 내가 얼마나 물질 쾌락에 찌든 인간인지 깨닫게 되고, 시무룩해져.
책꼽문 : 나는 전적으로 문자로 기울어진 사람이다. 그럴수록 책과 문자의 중요성을 냉정하게 낮춰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으로 인해 바로 나 자신이 가장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소로는 그런 어리석음에 대해 마치 놀리듯 썼다. 자신의 지식을 끊임없이 써먹어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무지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무지를 아는 것인데 말이다.
책꼽문 : 지금 살고 있는 드넓은 시골 땅은 원래 농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접고 백수가 되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땅에 내가 심은 농작물을 사슴, 토끼, 민달팽이가 초토화시킬 때 비이성적으로 치밀어 올랐던 살의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다. 내 것이라는 것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어떤 짓이라도 하게 된다는 뜻임을 그렇게 배웠다.
12. 비스킷(김선미)
어설픔과 참신함의 불균형을 지탱하는 힘, 작가의 따뜻한 눈.
13. 훌훌(문경민)
아, 깊고 무거워. 이토록 적절한 제목의 역설이라니!
책꼽문 : 날 만나길 원하든 말든 반드시 찾아가고 싶었다. 나를 낳은 부모가 한심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포기했던 내가 이만큼 제대로 커버렸노라고. 내 부모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한 번은 봐야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그들 앞에서 차갑게 돌아서고 싶었다.
14. 지나간 것과 지나가고 싶은 것(김민혜)
독립서점, 동네책방에서 건진 쾌거. 사소한 일상 에세이를 가장한 일생 이야기가 날카롭게 아름답다.
책꼽문 : 어렸을 적엔 엄마가 어디냐고 묻는 말이 무서웠다. 대개 내가 있어야 마땅할 곳에 없을 때 물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동선을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어디냐는 물음엔 여전히 제 발이 저려온다. 얼핏 죄책감과 닮은 감정의 실체는 나의 안부를 늘 궁금해하고 있을 엄마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15. 아침 그리고 저녁(욘 포세)
2023년 노벨문학상 작가 욘 포세와의 첫 만남. 마침표 찾아 끝없이 이어지는 활자들이 북유럽 바닷가 안개처럼 뿌옇고 건조하고 서늘하다.
16. 하늘이 레이스처럼 빛나는 밤에(엘리너 랜더 호위츠)
귀여운 그림책.
17.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황영미)
평범했나봐.
18. 너는 어떤 씨앗이니?(최숙희)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은… 교훈적인 듯. ㅎ
19. 열세 살 우리는(문경민)
자신이 쓰는 대상에 진지한 작가는 참 아름답구나. 아이든 어른이든.
책꼽문 : 다 그만두고 싶다고 딸에게 고백하듯이 말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렸어야 했다. 어쩌면 엄마는 보리에게 손을 내민 것일 수도 있었다. 그동안 보리는 똑똑하고 잘나고 까칠한 딸처럼 굴려고 했다. 엄마가 우울해하든 말든, 집이 지진으로 무너지든 말든 구름 위를 통통 튀어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야 침몰하지 않을 것 같았다.
20. 오십에 읽는 주역(강기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낸 주역. 왠지 위안이 되네. ㅎ 아자아자! 인생은 오십부터!
책꼽문 : 천명은 무엇인가? 나의 우주를 이루어준 나의 연들을 통해 하늘이 내게 비친 뜻이 나의 천명이다. 나의 천명은 나의 연들을 통해 내게 찾아오는 것이다. 나는 매일 새로운 사건과 마주친다. 그에 따라 나의 천명도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므로 사실 우리 인생에서 무엇도 잘못되지 않는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그에 합당한 새로운 천명이 나에게 제시되는 것이다. 귀천하는 날까지 부지런히 길을 걸어가면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나의 천명이라고 할 수 있다.
21. 더우면 벗으면 되지(요시타케 신스케)
유쾌한 책. 그래, 이런 인생 자세로 대충 살자. 껄껄껄. (지금보다 어떻게 더 대충 삽니까? 님 양심 좀. ㅋ)
22. 탈서울 지망생입니다(김미향)
결국 하고 싶었던 건 탈서울이 아니라 서울에 집 있는 남자와의 결혼이었나 싶어 허탈하다 못해 승질이…. ==
23. 프린들 주세요(앤드루 클레먼츠)
최고! 공독쌤이 슬로리딩 작품으로 오랫동안 밀고 있는 이유 납득 완.
책꼽문 : 프린들이라는 낱말은 세상에 태어난 지 3주도 안 됐어. 난 이제 이것이야말로 교사로서 소망하고 꿈꿔온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명한 학생들이 고리타분한 교실에서 배운 생각을 받아들여 그것을 세상 속에서 실제로 실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회인 거야.
(…)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내가 작은 역할을 맡아야 할 것 같구나. 그래서 악역을 선택했다. 근사한 이야기에는 반드시 악당이 등장하잖니?
24. 창가의 토토(구로야나기 테츠코 /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철 지난 베스트셀러를 넘어 간간이 누군가들의 인생 책으로 등장하는 집요함에 못 이긴 척 읽기 시작, 중반까지는 나름의 감동도 있고 뭉클함도 있었으나… 어라? 뭐지? 이 가해자의 해맑음은?
결론 : 하여간 니뽄 이 음침한 새퀴들 전범국 따리 주제에 지치지도 않는 피해자 코스프레 지긋지긋!
25. 요괴 도시(배명은 외)
제목에 비해 평범한 괴담 단편집.
26. 다하우에서 온 편지(앤 부스)
빤햐, 빤햐.
27. 지루하면 죽는다(조나 레너)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하루 이틀. 페이지마다 지루하게 쓰지 말라는 잔소리가 몹시도 지루하다. ㅜㅜ
책꼽문 : <햄릿>을 기점으로 이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미스터리가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전 작품에도 항상 특이하게 행동하는 주인공이 등장했지만, 이 정신 나간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랑에 빠져 그러는 것 뿐이었다(로미오와 줄리엣은 욕망에 사로잡혔을 뿐, 복잡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햄릿> 이후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불투명해진다.
28. 잔류인구(엘리자베스 문)
그저 좋다, 라는 말밖에는. ㅜㅜ 엘리자베스 문, ’철학적 SF’라는 장르를 창조하다.
책꼽문 : 그는 오필리아가 가장 덜 아끼는 자식이었다. 갓난아기였을 때조차, 엄마는 절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듯이 젖꼭지를 물어 당기던 탐욕스러운 젖먹이. 그 탐욕스러운 아기는 까다로운 아이로, 무엇에도 만족할 줄 모르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그는 툭하면 다른 애들과 다투고 공정함을 요구했는데, 그 공정함이란 늘 자기한테 유리한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았다.
: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 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괴동물들한테서 받은 역할로도 충분하고도 남았다.
: 그의 오래된 목소리는 의무에 대해 말하고, 솔직히 그 예쁘장한 목걸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지적하며 그를 괴롭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 창작의 기쁨, 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자식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 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29. 단골이라 미안합니다(이기준)
카페 낭인의 카페 탐방기. 마음에 쏙 드는 커피 맛과 분위기를 찾아 하루 서너 곳의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구나. 신기 방기…
30. 5번 레인(은소홀)
가슴이 몽글몽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딱 이 소설 속 10대로 돌아가고 싶어.
책꼽문 : 3번 레인 선수에게 DQ가 떴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몸이 앞서 나왔을 것이다. 3번 레인 선수는 전광판을 올려다보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 DQ가 아니었다면, 가뿐하게 결승에 오를 수 있는 기록이었다. 나루는 마치 자기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 지금 저 선수는 실격을 당한 것이 억울해서 우는 것이 아니다. 여름 내내 한 움큼씩 쌓아 올린 모래성이 밀려오는 파도에 허물어졌을 때의 허무함, 그래도 내일 다시 모래성을 쌓으러 가야 한다는 막막함 때문일 것이다.
31. 학교 서바이벌 키트(엔네 코엔스)
동서고금, 10대에게 따돌림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ㅜㅜ
32. 우리반 애들 모두가 망했으면 좋겠어(이도해)
<자음과 모음 청소년 문학상> 영 못쓰겠네. 왤케 거칠고 장황하고 겉멋이 심한 겨. 편집자가 전혀 손을 안 댄 느낌.
33. 따까리, 전학생, 쭈쭈바, 로댕, 신가리(신설)
<자음과 모음 청소년 문학상> 영 못쓰겠네. 왤케 거칠고 장황하고 겉멋이 심한 겨. 편집자가 전혀 손을 안 댄 느낌. 2
34. 노 휴먼스 랜드(김정)
용두사미. 참신하게 잘 나가다 슬슬 삐끗, 급기야 배신감 드는 결말. 전후반이 다른 작품 느낌. 아니나다를까 괜찮은 앞부분까지가 딱 공모전 수상작. 미완성작으로 상 받을 때의 위험성 잘 아는 1인으로서 그저 눙물이… ㅠㅠ
책꼽문 : 내가 이 모양인 건 다 할머니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할머니는 곧 죽을 사람처럼 말했다. “올해가 마지막인 것 같구나.”라든가 “할머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라고. 어렸을 때는 그런 말을 들은 날엔 잠도 잘 못잤다. 밤사이에 할머니가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멀쩡한 모습으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기쁘지만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두려움에 익숙해졌다. 두려움은 한번 익숙해지고 나니 벌 거 아니었다.
35. 품위 있는 삶(정소현)
고른 단편들. 자본주의 끄트머리에 선 인간의 생과 존엄에 대한 진지한 고민.
36. 어둠의 속도(엘리자베스 문)
이쯤 되면 글쓰기가 단지 재능이나 기술의 요소를 뛰어넘어 깊이, 아주 깊이 인간의 바닥을 파고 내려가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구나 싶어져.
책꼽문 : 나는 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신이 인간들을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나쁜 일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나쁜 부모들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나쁜 부모들은 자식들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한 다음, 자식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그런 짓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아도 성장과 생활은 충분히 힘들다. 나는 이것이 정상인들에게조차 사실임을 안다. 어린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아기들은 모두 여러 번 비틀거리고 넘어진다. 아기들의 얼굴을 보면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걸음마를 더 어렵게 하려고 몸에 벽돌을 묶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37. 마고(한정현)
뭐지? 이 어설프고 정신없는 끄적거림은? @@
38. 교실 맨 앞줄(김성일 외)
‘학교’를 소재로 한 다양한 단편들. 이 중 <과학상자 사건의 진상>과 <백 명의 공범들>(애지중지라는 명목 아래 재능 있는 딸을 지 품에 묶어두려는 애비를 속이기 위해 교사와 전교 학생 모두가 공범이 돼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탈출시키는, 우아하고 통쾌한 가부장 탈출기!)이 젤 좋구먼.
39.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무루)
와, 너무 좋아. >< 그림책으로 이토록 우아하게 타인을 이해하고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풀어내다니! 이 책 덕에 그림책을 마구 보고 싶어졌어. 육덕에 선물하고픈 책!
책꼽문 : 믿을 수 없겠지만 또래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아이가 최선을 다하는 일은 친구를 찾는 것이 아니다. 태연을 가장하는 것이다. 친구가 없다고 울 수도, 원망할 수도, 도망치거나 애원할 수도 없으니까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스로 견딜 만하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정말 스스로에게는 나쁘다.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마음보다도 결과적으로 더 나쁜데, 스스로의 감정에 무뎌지려고 노력을 거듭하다 보니 실제로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거나 들여다볼 수 없게 된다.
40. 다섯째 아이(도리스 레싱)
와… 이건 가족 소설을 빙자한 공포 호러야! 너무 무섭잖아! 백인 작가가 차별인 줄도 모르는 몽골인, 아시아인 차별도 낭낭. @@
41. 복제인간 윤봉구(임은하)
귀여운 책.
42. 시작하는 너에게(마에다 마유미 글/그림)
새끼곰을 독립시키는 어미곰의 마음. 새끼도 없는데 왜 눈물이… ㅜㅜ
43. 세상이 물고기로 변했어요!(기드온 스테르 글/폴리 베르나테네 그림)
시골에서 행복하게 낚시하며 살다 도시 아들네 집에 온 할아버지가 시름시름하자 손녀가 도시를 함께 낚아주는 귀여운 그림책.
44. 진짜 진짜 거짓말 아니야!(조영글 글그림)
커다란 거짓말을 ‘너 좋아’라는 참말로 덮어버리는 꼬맹이 여자애, 깜찍하구만.
45. 아빠 빨강(정나은 글그림)
크리스마스에 일하는 아빠를 위해 온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 아이의 마음, 몽글몽글.
46. 전혀 다른 열두 세계(이산화)
초기작 답게, 패기 있고 신선하고 어수선하다. 사람의 영혼이 지구 자전 속도를 못 견디고 우주로 떨어져나간다는 발상은 다시 봐도 기발.
47.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김창완)
가죽 재킷 걸치고 기타로 오도바이를 타도, 아재력과 보수 꼰대력까지는 어쩔 수 없네. 안전하게 곱게 자란 엘리트 딴따라가 보여줄 수 있는 한계치인 듯.
책꼽문 : 가만 보니까 걱정이 안개를 닮았더라고요. 코앞에서 눈을 가리지만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사라져요. 걱정거리가 있으면 없는 셈 치고 발걸음부터 떼세요. 걱정은 내 마음의 배신입니다.
48. 삐약이 엄마(백희나)
백희나 인간문화재 추진 준비위원회 회원 여기요!
49.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황인찬)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보는 시인의 등 뒤를 더듬더듬 따라가다 보면 도달하는 이세계. 시인이 괜히 시인이 아녀!
50. 달 샤베트(백희나)
백희나 인간문화재 추진 준비위원회 회원 여기요! 2
51. 어제 저녁(백희나)
백희나 인간문화재 추진 준비위원회 회원 여기요! 3
52. 나는 개다(백희나)
백희나 인간문화재 추진 준비위원회 회원 여기요! 4
53. 밥 먹다가, 울컥(박찬일)
아니, 요리사가 글을 이렇게 잘 써버리면 어쩝니까! ㅜㅜ
책꼽문 : 평생 회를 뜬, 흔히들 ‘칼잡이’라고 부르는 일식 요리사 친구가 있다. 그가 낀 어느 술자리에서, 요리사가 아닌 어떤 녀석이 이렇게 물었다. “너 지금까지 고기 몇 마리 죽여봤냐.” 나는 순간적으로 싸늘한 고압전기가 뒤통수를 훑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묻는 데도 방식이 있다. 그가 물고기 살해범이 되는 순간이었다. 죽이는 일은 밥하는 일에 연결되어 있다.
54. 너의 여름을 빌려줘(리지 덴트)
넷플릭스 로맨스 영화 장르에서 오다가다 봤음직한 상큼한 로맨스 소설.
55. 로봇드림(사라 바론)
극찬받은 애니메이션의 원작이라던데, 내 정서에는 뭔가 좀 갸웃.
56. 아직도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를 믿어?(이하늬)
옥고를 치르고 있는 이화영 평화부지사의 딸, 이하늬 수의사의 책. 변호사비 대느라 집도 팔았다는 소식에 조금이나마 보탬 되시라는 의미로 샀으나 책이 조금만 더 볼 만하게 만들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
57. 긴긴밤(루리)
남편을 병원에 두고 돌아온 7월 어느 날의 일기. “매일 책일 읽어도 더 좋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하다. 7월의 나를 가장 행복하게 채워준 책 긴긴밤. 이렇게 쓸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들여다보고 싶어져.” ‘내 인생의 책’에 아마도 오래 남을 책. 그저 아름답다.
책꼽문 : 코끼리는 강했다. 마음만 먹으면 바람보다 빨리 달려서 상대를 받아버릴 수도 있었고, 물소 열 마리보다 무거운 몸통으로 상대를 깔아뭉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코끼리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면 그것은 곧 싸움으로 번졌고, 싸움은 죽음을 부르는 일이었다. 코끼리는 스스로의 목숨도, 남의 목숨도 함부로 여기지 않았다. 그것이 코끼리들의 지혜였다.
58. 여름의 루돌프(김성라 글/그림)
만화 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제주도 할머니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억도 나지 않는 내 두 분 할머니가 보고 싶어져. 우리 할머니들은 나를 얼마나 예뻐해주셨을까. 할머니들 품에 나는 또 얼마나 파고들었을까. ㅜㅜ
59.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합니다(하림 글 / 지경애 그림)
건강하고 따사로운 책.
60. 천 개의 아침(메리 올리버)
퓰리처상 수상 시인이 50여 년 간 해변가 마을이자 아티스트들의 고장인 프로빈스타운에서 살며 마주한 수많은 아침 풍경을 보면서 쓴 시집. 갈피 갈피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아침에 바닷가로 내려가면
시간에 따라 파도가
밀려들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지,
내가 하는 말, 아, 비참해,
어쩌지—
나 어쩌면 좋아? 그러면 바다가
그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하는 말,
미안하지만, 난 할 일이 있어.
61. 태국 문방구(이현경)
태국 문방구 유람기. (구 문구의 여왕 ㅇㅈ이 떠올랐. ㅎ) 여행책도 참 다양하구먼. ㅎ
62. 직장 상사 악령 퇴치부(이사구)
이 나이 먹도록 귀신 이야기는 왤케 재밌는 걸까. ㅎ
63.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유시민)
대한민국 예언자 유스트라다무스의 족집게 예언, 윤석열 몰락!
64. 상황과 이야기(비비언 고닉)
자기 서사의 거장,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는 비비언 고닉의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통찰을 담은 책. (사실 나는 이번에 처음 앎.) 책에 소개된 대가의 문장들이 어찌나 어마어마한지 몇 번이나 숨을 참게 된다.
책꼽문 : 한 번은 전남편과 내가 친구를 데리고 리오그란데강으로 래프팅을 하러 갔더랬다. 강은 뜨겁고 거칠었다. 음울하면서도 눈부시고 외졌다. 협곡의 강들과 황량한 기슭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뱀들이 출몰하고 돌발 홍수로 물이 붇기도 했다. 강의 한쪽은 미국 텍사스, 다른 쪽은 멕시코 영역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다녀온 지 일주일 후 멕시코 쪽 저격수들이 래프팅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을 죽였다. 나중에 우리는 저마다 이 여행에 관한 글을 썼다. 남편은 우리 가이드였던 강가의 하층민들에 또렷하게 초점을 맞추었고, 친구는 불법 이민의 고통에 대해 냉정하게 썼으며, 나는 남편과 내가 얼마나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해 음울하게 썼다. 이 글들을 나란히 놓고 읽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경험이었다. 우리 셋 모두 강과 무더위, 고립감을 토대로 이야기의 틀을 짰다. 하지만 그 배에 나란히 앉아있던 우리는 철저히 혼자서, 저마다의 불안으로부터 서술자를 조각해내고 있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과 가혹함의 한가운대에서 우리가 함께하고, 우리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해줄 서술자.
65. 엉덩이즘(헤더 라드케)
인간, 그 중에서도 여자의 몸, 그 중에서도 ‘엉덩이’ 하나만을 집요하게 탐구한 전무후무한 책. 너무 커도 너무 빈약해도 너무 쳐져도 너무 작아도 문제인 엉덩이가 유사 이래 여자들을 어떻게 옥죄고 규정해왔는지 역사적, 사회적으로 밝히고 있다. 아슴푸레하던 안개 하나가 탁 걷히는 느낌.
책꼽문 : “공작의 꼬리 깃털은 언제 보아도 속이 메슥거립니다.” 찰스 다윈이 1860년에 하버드 대학의 식물학자 아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유명한 말이다. 그가 메스꺼움을 느낀 이유는 공작 꼬리가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그토록 장엄하게 뚜렷한데, 그토록 무용한 신체 부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어서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진화는 효율성을 우선순위로 삼는데, 공작의 꼬리는 어느 모로 보나 효율적인 부착물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모를까.
: 엉덩이는 보기엔 우스울지 모르나 의미와 뉘앙스로 범벅이 된 대단히 복잡한 상징이며, 그 안에는 유머, 성, 수치, 역사가 한가득 품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엉덩이는 인종적 위계를 만들어내고 강화하는 수단이자, 근면한 노동이라는 미덕의 잣대이자, 성젹 욕망과 이용 가능성의 척도로 기능해왔다. 외과적 수술 없이 엉덩이의 모양을 극적으로 바꿀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혹은 바로 그 이유로), 엉덩이의 형태와 크기는 고릿적부터 그 엉덩이를 가진 여성의 천성 자체를 뜻하기도 했고 도덕성과 여성성과 심지어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증거로도 여겨졌다.
: 여성의 몸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허용될 유일한 방법은 남성에게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이 되는 것뿐이다. 믹스는 엉덩이를 공격적으로 성애화하면서, 주류 백인 문화에서 “역겹다”고 여겨졌던 이 신체 부위가 사실 좋다고 주장한다. 모든 몸이 아름답거나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쏙 들어간 허리에 둥그런 엉덩이를 지닌 여자가 보란 듯 걸어가면 혼이 쏙 빠지기 때문”이다. 이 노래에서 여성의 몸은 남자의 시각적 만족을 위해 존재한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매력적인지 선어하는 주체는 어김없이 남성이다.
66. 제철행복(김신지)
독립책방, 동네책방의 쾌거-2. 가물가물한 24절기를 벽장에서 하나씩 끄집어내 먼지 털고 깨끗이 닦아 반짝반짝 보물을 만들어낸 작가에게 찬사를! 책 읽는 내내 계절 따라 우리 자매들이랑 나들이 가고 싶어져서 참느라 혼났네. ><
책꼽문 : 학창 시절 한 반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이 있으면 대체로 키를 견주어 나눠 부르곤 했다. 작은 신지, 큰 신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르는 사람만 편하려고 고민도 없이 그랬구나 싶지만, 소서와 대서 앞에선 어쩐지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 작은 더위 소서 뒤에 오는 큰 더위 대서. 소서야, 부르면 비 내리는 운동장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안경 쓴 친구가 나를 돌아보는 것 같고, 대서야, 부르면 가방을 비뚤게 메고 우리 야자 째자, 말하는 결단력 있는 친구가 뜨거운 손으로 팔을 붙잡는 것 같다.
: 조만간 친구들을 만나 하지 감자에 보리 매주를 마셔야지. 감자 수확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서. 감자 환갑, 보리 환갑이 뭔지도 알려주면서. 할머니 같은 소리 좀 그만하라며 친구들은 웃겠지.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할머니의 역할이라면 나는 이미 할머니인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으로 시작되는 얘기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 긴 시간을 보기에 지금을 살 줄 아는 사람. 언제까지라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 물론 첫눈에도 ‘공식’은 있다. 서울의 첫눈은 종로구 송월동에 위치한 서울기상관측소에서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目)으로 본 눈(雪)이 관측되어야 공식 기록으로 발표한다. 한 해의 첫눈을 목격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까.
67. 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과학이 없던 시절, 옛사람들이 밤을 물리치는 해와 내려치는 번개를 보며 ‘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심정=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보는 내 심정. 이 짧은 글 안에 어떻게 이토록 완벽한 세상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 <맡겨진 소녀> 때와 똑같은 의문.
책꼽문 : 뜬금없이, 기술학교에서 나와 여름에 버섯 공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출근 첫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버섯을 땄음에도 손이 더뎌 다른 사람들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침내 라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작업을 시작한 지점을 돌아보았는데, 거기에서 벌써 새끼버섯이 배양토를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68.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안리타)
그래, 이런 멜랑콜리한 감성도 필요하지. 백혈병 걸린 가냘픈 소녀가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마지막 잎새 같은.
책꼽문 : 어떤 별은 어두워 눈에 보이지 않아 / 그런데 누군가는 그 빛에도 심장이 뛰어 / 그러니까 그냥 / 그대로 아프다 말고, / 숨지도 말고 / 여기에 이렇게 / 아름답게 존재해.
69. 침팬지 폴리틱스(프란스 드 발)
아마도 2024년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과 함께 가장 많이 입에 올렸을 ‘침팬지 폴리틱스’. 대체 뭔 책이기에? 하면서 봤는데 침팬지까지 갈 거 없이 초반만 잠시 들여다 봐도 윤석열 이 새퀴는… (절레절레)
책꼽문 : 심리학자인 하비 긴스버그와 셜리 밀러가 어린이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장 우위에 있는 아이는 싸움에 개입해서 약자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물건을 나눠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행위가 동년배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연구자들은 밝히고 있다. 인류학자들의 원시부족 연구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거기서 추장은 통계적 역할에 필적하는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추장은 주면서 받는 것이다. 추장은 부유하지만 부족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축제를 베풀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
70. 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정)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라는 부제에서 짐작하듯 경력 오랜 기자가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목격한 고통의 장면들, 그것을 대하는 언론과 대중의 태도. 2024년 책 목록 중 가장 오래 읽은 책. 거의 대여섯 달 걸린 듯한데, 한 장 한 장이 너무 무겁더라.
책꼽문 : 10.29 참사 당시 실시간으로 공유된 영상에는 희생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중이 보지 말아야 할 부분이 너무도 많이 포하되어 있었지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부분 역시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그 공간에서, 길을 걷던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 자체는 반드시 보이고 기억되고 증언되어야 할 비극이었다.
71.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이소연)
취지는 알겠는데, 한 줌의 신념을 어떻게든 책으로 만들어보려고 99개의 통계와 기사와 남의 말들을 덕지덕지 꿰매 붙인, 읽기 괴로운 책. ’객관적’ 자료 뭉치는 논문이지 책이 될 수는 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준 책.
72. 여성작가 SF 단편 모음집
더쿠 덕에 알게됐는데, 재밌네. ㅎ 독특함과 탄탄함까지 갖춘 몇몇 작가들 눈에 띄어.
73. 74. 75. 삼체 1~3권(류츠신)
오 마이 갓! 내가 대체 뭘 읽은 겨… 아는 만큼 보이는 건 SF도 마찬가지구나. 물리 따위 모르는 과학맹의 눈에는 그저 황당무계할 뿐. @@ 1권만 읽고 말 걸… ㅜㅜ
76. 스노볼1(박소영)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어설픈 버전 느낌. ^^;; 2권은 안 읽었… @@
77. STORY(로버트 맥키)
두 번째 완독. 영화도 책도 반복은 죽어도 싫은 내게, 이것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사건! 세 번째읽을 때는 어떤 새로움을 발견할지 두근두근.
78.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정지혜)
제목만큼 독특하고 귀신 나오는 소설. 오싹하고 슬프고 재미있다.
: 엄마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태울 듯 뜨겁게 싸웠다. (…) 결론은 항상 같았다. 나 때문에.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통에 산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바닥을 구르고 벽을 내리찧고 가슴을 두드리는 자학의 소음은 충분히 폭력적이었다. 초반에는 둘 사이에 끼여 함께 싸웠다. 할아버지를 돌려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울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 사이를 봉합할 수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79. 미래의 미라이(호소다 마모루)
애니메이션 원작 소설인데 소설이라기보다 애니메이션 화면을 캡쳐해 책에 옮기고 거기에 글을 붙여 놓은 듯한 모양새의 책.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족과 화해한다… 일본 이런 류 참 좋아해.
80. 친절한 금자씨 각본집(박찬욱 / 정서경)
와, 죽인다. @@ 대사 하나 하나, 지문 하나 하나 완벽하게 영화 그 자체야. 잘 된 시나리오란 이토록 버릴 말 하나 없어야 하는 것이로구나.
81. 다정한 건 오래 머무르고(소운)
잔잔한 에세이. 몸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이 있듯 다치기 쉽게 태어난 마음도 있을 텐데(둘 다인 내 남편은 대체! ㅜㅜ) 이 책의 작가가 그래 보인다. 유리가 제 몸뚱이 금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행복을 좇아 살아가는 법.
책꼽문 : 꽃을 좋아한다고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일상에서 꽃을 마주할 때마다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준다. 나는 이게 얼마나 수고로운 일이고 고마운 것인지 너무나 잘 안다. 그 사람들의 시간에 내가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 예쁜 마음들을 한 송이 한 송이씩 모으다 보니 내 마음에 어느새 시들지 않는 꽃밭이 생겼다. 변하지 않는다는 거,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82. 만복이네 떡집(김기리)
아, 사랑스러워!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이어야 어린이책을 잘 쓸 수 있겠구나. ><
83. 무한의 섬(정지돈)
내가 아무리 SF 빠라지만 이런 식의 답 없는 SF는 곤란하지. 흥!
84.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
오, 이런 내용이었구나. 예상보다 재밌네. 공장에서 미친 듯이 찍어내면서도 괜찮은 수준을 뽑아내는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은 대체!
85. 오렌지와 빵칼(청예)
와, 이런 소설적 집요함 오랜만이네. 예리하게 찔러대며 엄청나게 몰입시키는 힘! 한국 문학은 한강 이후 젊은 여성들이 이끌어가는구나. 광장에서도 문학에서도 2030 여성의 힘!
책꼽문 :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라는 엄마의 유언대로 나는 아무렇게나 던져도 같은 면밖에 나오지 않는 동전처럼 살았다. 잘 웃고, 잘 배려했고, 잘 참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가짐을 신봉하며 살았음에도 바란 적 없던 어떤 면이 생겨났다. 이제 동전은 완전한 양면을 가지게 됐는데, 낯선 면을 보고 있으면 원래부터 있던 면인지 동전이 통째로 바꿔서 진 것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저 성숙의 또 다른 모습이겠거니 싶어 판단을 유예했다.
: 내가 왜 이 남자를 만났을까. 그가 착해서였다. 착한 사람을 거절하는 건 나쁜 자의 몫이고 손가락질 받는 일이니까. 그럼 왜 5년이나 견딘 걸까. 오래된 연인은 존재만으로도 나의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증명하는 수단이 됐다.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동안 나는 이 남자를 도구로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구가 나에게 결혼을 하자고 하네. 어쩜 좋아. 정말 어쩜 좋아!
86. 틀니와 싹수(청예)
<오렌지와 빵칼> 끝내고 허겁지겁 찾아 읽었는데, 먼저 쓴 작품인지라 풋풋한 만큼 어설프고 과격하구먼.
87. 끌어안는 소설(정지아 외)
실패한 기획 소설집. ‘가족’을 주제로 했으나 중구난방, 기획 의도대로 잘 뽑히지 않았네.
88. 다마논드호(정지혜)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에 홀딱 반해 찾아 읽었는데, 뭔 소설을 쓰다 말았어… ㅜㅜ 그래도 전작(다마논드호)보다 다음작(없는 사람들-)이 훨씬 훌륭하니 얼마나 다행이여.
89.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조던 스콧 글 / 시드니 스미스 그림)
글 몇 줄과 그림 몇 장으로 사람을 울려버리다니, 그림책 작가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흉악하고 위험한 부류로구나! 흑흑…
90.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박서련)
자기 세계 확고한 요즘 여성 작가 중 독보적인 박서련의 최근작, 이라 쓰고 혹시나 싶어 검색해보니 어머나! <마법소녀 복직합니다>가 작년에 새로 나왔잖아! 꺄! 경쾌하고 산뜻하고 올바른 데다 1년에 장편 한두 편씩은 뚝딱 내버리는 왕성함까지! 그저 놀라울 밖에. @@
책꼽문 :
“당신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니에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내가 죽으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라고 당시에는 생각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조금 지나서의 일. 하지만 조금 지나서라는 것은, 자신을 아로아라고 소개한 그 여자가 그 시각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찾아왔다는 것까지 이해한 시점을 말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그저 누군가 지금 내게 말을 걸어준 게 기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울면서 물었다.
“내 운명에 대해 알아요?”
“그럼요.”
정말 믿음직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로아는 다가와서 아주 소중한 것을 만질 때처럼 부드럽게 내 손을 감싸쥐고 말했다.
“당신은 마법소녀가 될 운명이에요.”
91. 호르몬이 그랬어(박서련)
박서련의 초기작 3편을 모은 소설집. 각기 나름의 사정과 애틋함으로 웅크린 어깨를 가진 인물들. 안아주고픈.
92. 털 헤는 밤(이공이)
제주살이 중 제주 책방에서 산 책. 표지에 고양이가 그려져 있고 제목이 <털 헤는 밤>이니 볼 것도 없이 이건 고양이에 대한 책이구나! 냉큼 집어들 수밖에. ‘나만 없어, 고양이’를 부르짖으며 날이면 날마다 유튜브에서 남의 집 고양이만 보고 앉은 사람이라면 응당. 귀엽고 따사롭다. 더 주세요, 고양이.
93. 말장난(유병재)
와, 유병재는 천재일 지도? 삼행시 또는 사행시, 초성으로 풀어내는 말장난의 맛이 장난 아녀.
<큰누나>
큰 돈을 벌게 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모님 생신에 음식이며 선물로 고심하는 건 내가 아니라 큰누나다. 늦은 밤 취한 엄마 아빠를 모시러 가던 것도 남자인 내가 아니라 수험생인 큰누나였다.
누 군가에게 찔린 상처로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도 내가 전화를 거는 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누나였다.
나 중에 내가 죽어서 신에게 내 삶은 왜 이리 불행하기만 했느냐 따졌을 때, 신이 나에게 조용히 보여줄 얼굴도 큰누나다.
<작은누나>
작 가의 꿈을 먼저 꿨던 건 작은누나였다. 글도 나보다 훨씬 잘 썼고, 끼가 많은 것도 나보단 누나 쪽이었다. 숙제처럼 나갔던 장기자랑에서 땅만 보고 쭈볏대던 나와는 달리 누나는 집에서도 거울을 보면서 미스코리아 당선 소감을 연습하고 이정현 테크노 춤을 따라 하곤 했다.
은 근히 받아왔을 둘째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첫째는 첫째의 밥을, 막내는 막내의 밥을 덜어가고 나면
누 룽지로 밥공기를 채우던 건 작은누나였다. 지금은 네 아이의 엄마. 엄마에게 비교적 값싼 물건이 필요할 때마다 가장 먼저 서두르는 것 역시 작은누나다.
나 한테 빌려 간 일억 오천 받을 생각이 없다.
94. 완전한 행복(정유정)
제주 숙소에 있기에 무심코 집어들었는데, 느므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며 읽다가 문득 생각났어. 2021년 여름 화진이 보러 갔을 때 ㅂ가 얘기한 ‘고유정 소설’이 바로 이거구나! 이렇게 툭툭, 등장해주는 자매들 덕에 내 나날이 심심하지 않구나. ㅎ
그건 그렇고 어우, 소설은 너무 무섭고 끔찍혀. ㅜㅜ 현실을 너무 가져다 썼다는 비판 들을 만도!
책꼽문 : 심장이 성난 개처럼 컹컹 짖고 있었다.
95. 찬란한 멸종(이정모)
신선한 느낌의 과학책. 멸종의 필름을 거꾸로 감아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써내다니, 이정모 이 양반 대단한 이야기꾼일세! 그나저나 인류 어떡하지? ㅜㅜ
책꼽문 : 자연사는 지병이 없는 사람이 어느 날 잠자다가 이유 없이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자연사가 아니라 돌연사다. 야생동물의 자연사는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혀 죽는 거다. 사자와 호랑이도 평소에는 자기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놈들에게 잡아먹혀 죽는다. 사람이 자연사한다고? 공원에서 산책하는데 독수리가 날아와 목덜미를 낚아챈 뒤 하늘에서 떨어뜨려 뼈가 부서지고, 이때 사자가 나타나서 창자를 찢어 먹고, 너덜너덜해진 사체에 까치가 와서 눈을 빼먹는 것. 이게 바로 자연사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인류가 자연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길지 않은 병사가 그들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다.
96. 내가 죽기 일주일 전(서은채)
잔뜩 멋부린 소설은 이렇게 오글거리는구나. 확실한 거울 치료! ><
97. 512번째 우주(김아영)
“인간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순간 새로운 평행우주가 생성되는 세계를 보여준다.”라는 설명은 그럴싸한데,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미약… 넘쳐나는 소설의 시대, 살짜쿵 함량 미달.
98. 어쩌다 학교가 집이 되었다(김윤)
창비 스토리공모전 수상작인데 음… 학교, 괴담, 집 나온 아이들, 학교에서 사는 아이, 가출팸… 뭔 얘기 하고싶은 지는 알겠는데 이음새가 너무 복잡한데 허술햐.
99. 폐교생활백서(프로개)
지구의 어떤 식물도 키워내는 식물 마법사 프로개가 폐교를 빌려 5년 동안 수많은 식물을 가꾸며 살아간 이야기. ‘남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넘 기쁘고, 책은 재밌어. 진짜 고수는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다는 진리는 덤.
100. 무코다 이발소(오쿠다 히데오)
야이 씨! 이따위 것도 소설이라고! 자신 없으면 쓰지를 마! 썅! 소설 읽고 이리 열 받기는 또 오랜만이네.
101. 도서관에 달팽이라니!(안지은 글 / 김현주 그림)
ㅇ은 꼭 저같이 귀여운 책을 냈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