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음풍농월, 짧고 긴 여행 이야기

[제주 여행]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길, 제주 비자림길 본문

하룻밤만더/제주

[제주 여행]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길, 제주 비자림길

네루다 2011. 4. 7. 23:11

2011년 1월 제주 여행. 폭설과 바람 앞에서 난감하게 즐거워하다.
체인이란 걸 처음으로 구경하고, 처음으로 체인을 감고, 언덕을 오르다 체인이 끊어지고, 그래서 공항 근처 렌터카 업체로 다시 가서 체인을 받아오고 하는 등...3박4일 내내 체인을 둘러싼 눈과의 실랑이가 계속된 여행. 
이틀째 밤 제주로 나갔다가 숙소인 서귀포 호텔로 돌아가는 밤, 하필이면 공동묘지 근처에서 체인이 끊어져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계속 헛바퀴를 도는 바람에 '이것은! 제주 귀신들의 장난?' 하며 덜덜 떠는 나를, 특유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달래주던 욱. 밑에서 덤비는 눈발하고 싸우는 것도 힘든데, 귀신 나온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늙은 여친이 얼마나 어이 없었을꼬.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다. 그날, 그 식은땀 나던 경험 이후로 '세상에 이런 귀신이?!'류의, 귀신 비스무레한 것들 나오는 방송이나 이야기 그만 솔깃하기로 결심.    
3박4일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의 따사로운 미소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눈과 바람으로 만난 제주 또한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너무도 강렬한 '각인'으로 남은 이곳, 비자림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죽기 살기로 한라산 중턱을 넘다가, 기가 막힌 풍경에 차를 세워 넋을 잃고 한참을 보았다. 눈발 속으로 얼핏 스친 표지판의 이름 '비자림로'만 외워두었을 뿐.
나중에 돌아와서 비자림로를 찾아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새겨둔 곳이었다. 나만 바라본 게 아니었구나, 나만 눈 밝은 게 아니었구나, 하는 허탈한 깨달음. 그리고 새삼 사무치는 아름다움. 눈발에 덮인 상록수들은, 서슬 푸르게 시리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2011년 1월 / 제주 비자림로 / LG옵티머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