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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짧고 긴 여행 이야기

[제주 여행] 제주의 풍경에 취하기 전, 우리가 꼭 만나야 할 4.3 본문

하룻밤만더/제주

[제주 여행] 제주의 풍경에 취하기 전, 우리가 꼭 만나야 할 4.3

네루다 2011. 4. 7. 23:02

2011년 1월. 욱과 함께 한 3박4일 제주 여행. 
제주에 도착하고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흩날리는 눈발이었다. 비행기가 땅에 닿으면서 점점 심해진다 싶더니 공항을 벗어날 무렵에는 제주 제일의 특산품인 '바람'과 손잡고 가히 '돌풍을 동반한 폭설'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에 온 첫날, 숙소로 가기 전에 제일 먼저 들르고 싶었던 곳은 4.3평화공원. 그동안 제주를 네 번 찾았으나 늘 홀로 여행으로 차 없이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던 지라, 선뜻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자동차를 빌리는 여행이니, 그동안 못가본 곳을 마음껏 다녀보리라는 욕심을 세웠고, 덕분에 3박4일 내내 욱이 운전하느라 고생했다. 이 당시 욱이 운전을 시작한 지는 1년6개월이 조금 넘은 터라 생초보라기에는 그렇고, 능숙한 운전자라고 우기기에도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원체 냉정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서울에서도 눈 오고 비 많이 온다 싶으면 절대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 남의 차를 빌린 여행에서 제주의 거대 돌풍 눈발과 맞닥뜨렸으니 그는 속으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욱이나 나나 체인이란 걸 처음 구경한 상황에서 어찌어찌 끙끙대며 함께 체인을 감고(손가락이 끊어지도록 바람이 찼다!), 조금 가다가 풀리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서서 다시 감고(또 다시 손가락이 끊어지도록 시려웠다), 그렇게 4.3평화공원으로 가기 시작했다. 제주의 교통 표지판에서는 한라산 도로 상황에 맞춰 '체인 없이 승용차 입산 통제' 등등의 정보를 내보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4.3평화공원에 도착했다. 여행자들이 하도 눌러대서 웬만한 터치로는 반응하지 않는, 무디기 짝이 없는 내비게이션을 달래고 윽박질러가며 눈발 날리는 산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4.3평화공원. 눈물이 날 뻔했다. 관람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서울에서 달려온 두 여행자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허락해준 4.3평화공원 직원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제주에 왔습니다. 이제야 들러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를 포함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4.3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은 채 제주의 풍경에만 취해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아프고 허허로웠다.
다음에는 눈이 오지 않는 날을 골라 들르리라. 그래서 위령탑과 추모공원까지 함께 보리라.

 

 

 
(2011년 1월 / 4.3평화공원 / LG옵티머스 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