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주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어쩌다 보니 이 집에 두 번이나 가게 됐어.
한 번은 한옥마을 숨길 걷다가 혼자서, 두 번째는 전주에 놀러온 후배들과 함께.
사흘 동안 두 번이나 먹으러 갈 정도로 맛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이...사실 이 집이 유명세만큼 맛도 좋은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거든.
안 먹어봤느냐고? 물론 먹어봤지. 그것도 여러 번. 어릴 때도 먹었고, 늙어서도 먹고 있지. 그런데...그게 참 이상한 일이란 말이지.
밀가루라면 일단 질색팔색이고, 면 종류는 더더군다나 좋아하지 않으니 일삼아서 찾아갈 일은 없는데,
집에 있다 보면 엄마랑 나 둘 중 하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베테랑에 칼국수 먹으러 갈까?"라는 말을 꺼내곤 하니 말이지.
그럼 맛있는 거 아니냐고? 아, 글쎄, 맛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니까. 그럼 맛없는 거 아니냐고? 아니아니, 맛없는 것도 아니라니까.
아, 그럼 대체 뭐냐고! 버럭! @@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어디 가서도 "나 전주 사람이여-"라고 어깨 깨나 으쓱대는데, 그래서 '맛있고/없고(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입맛이지만)는 굉장히 분명한 편인데...이상하고 희한하게도...이집, 베테랑의 음식맛은 확실히 뭐라 말을 못하겠으니 이상하달밖에.
한 번 맛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게끔 눈물나게 맛있어서 유명하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확인해주는 또 하나의 예냐, 하면 또 그 정도로 맛없지는 않고.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멍에의 전당'도 아니라는 것. 쉽게 말해 그만큼 무난하고 또 무난한 맛이렸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음식 하나만큼은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전주 사람들이 주구장창 찾는 것을 보면,
맛 말고도 중요한 뭔가가 들어 있을 텐데...그게 바로 '세월'이고 '습관'이고 '기억'이자 '추억'이 아닐까 싶어.
삼백집과 웽이집의 콩나물국물이 묽어졌다고 툴툴대면서도 술 마신 다음날이면 쓰레빠 끌고 어김없이 가서 먹게 되듯이,
이 집, 베테랑 또한 전주 사람들의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하기야 한 자리 수십 년이면 그럴 만도 하지.
먹을 때마다 '대체 이건 무슨 맛이여...맛이 있는 거여, 없는 거여' 갸웃거리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전주 베테랑 칼국수집은 나 어렸을 때도 있었고, 나 늙을 때도 있을 거라는 것. 열다섯 살 성심여중 학생이 서른다섯 먹고도 찾아오고,
칠순인 울 엄니가 여덟 살짜리 손주 손 잡고 가 함께 칼국수 먹는 곳. 그리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살짜쿵 안심이 되는 것도 같고...
평범한 식탁에 평범한 식기들.
흐억 소리 나게 그득 담긴 칼국수. 들깨가루, 김가루, 고춧가루...웬갖 종류의 가루가루들이 빼곡이 들어차서...처음 본 사람들 충격
깨나 받을, '허벌난' 비주얼. -_- 자칫하다간 손가락 빠지기 쉬움.
자, 용기를 내자. 가루들이 안 잡아먹는다. 마음 굳게 먹고 과감히 들깨가루, 김가루를 헤집으면 하얗고 통통한 칼국수 면발이...
뒤집어도 허벌나다. 느무느무...많다. -_- 신기한 것은...아 배불러, 배불러...하면서도...정신 차려보면 국물 한 방울 안 남아있기 일쑤.
칼국수에 마약을 탔나. @@
여름 별미 콩국수. 미숫가루 듬뿍 얹어 콩국에 미숫가루 타먹는 맛. 아니 대체 이 맛은? 역시나 맛있는지 맛없는지 모를 맛. ㅎ
쓰다 보니 베테랑의 영업 비밀을 알겠다. 맛있음과 없음의 교묘한 줄타기. 극단적인 호오를 피한 영악한 상술.
그런데...또 먹고 싶은 건 왜냐고...ㅜㅜ
(전주 베테랑 / 2012년 5월 / 후지 FINEPIX AV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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