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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짧고 긴 여행 이야기

[필리핀 여행] 보홀의 숲과 강을 만나다, 보홀육상투어 본문

딴나라유람/필리핀(2011)

[필리핀 여행] 보홀의 숲과 강을 만나다, 보홀육상투어

네루다 2011. 10. 29. 00:13

보홀해상투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보홀육상투어. 보홀이 꽤나 큰 섬이고 볼거리들이 상당히 많은 터라 여행자 혼자서 택시 타고 다니기는 힘들기 때문에, 대개 예닐곱 군데의 볼거리를 한데 묶어 봉고차(?) 타고 휘리릭 다니는 육상투어들을 많이 한다. 나 또한 보홀 가기 전 미리 육상투어를 예약했는데, 약속했던 9시에 칼같이 리조트로 데리러 와준 현지인 가이드 덕에 편히 보홀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다.
육상투어 프로그램은 '안경원숭이(타르시어) 보호숲-초콜릿 언덕-흔들다리(행잉브릿지)-로복강 투어(배 위에서 강 보며 점심 먹기)-바클라욘 교회(보홀에서 가장 오래 된 가톨릭 성당)-혈맹기념비'로 이어지는데, 총 관광 시간은 5~6시간 정도.

제일 먼저 들렀던 안경원숭이 보호숲. 타르시(Tarsiers)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영장류로, 여우원숭이와 원숭이의 중간형이란다.
옴마나, 쟤 봐. 너무 작고 여리여리해서 귀엽다기보다 안쓰러움이 먼저 솟아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타르시어.
보호숲 구석구석에 저렇게 나무를 움켜쥔 채 살고 있다.

요다다! 아마도 스타워즈의 요다는 분명 타르시어가 모델일 게 분명해.

저 가늘고 앙상한 발가락. 쥐를 닮은 꼬리. 살짝 무섭게 생긴 것도 같은데, 아마도 쟤 보기에는 내가 훨씬 무섭게 생겼겠지.

크기도 생김새도 저마다 다른 타르시어들. 건강하고 행복하렴. 아프지 말고. 안경원숭이 보호숲은 입장료가 없는 대신 숲 여기저기에 기부함이 놓여있다. 세 번인가 네 번 정도 기부함에 동전을 넣은 듯.

초콜릿 언덕 : 높이가 대부분 30~50m인 일정한 모양의 작은 언덕이 무려 1268개나(!) 옹깃꽁깃 솟아있는 보홀 최고의 자연 명소.
카르멘 지역에 있어 원래 '카르멘 언덕'으로 불렸으나 점령했던 미군인가 머시긴가가 어느 날 여기 보러 왔다가 "뭐야? 초콜릿 닮았잖아? 초콜릿 언덕이라고 해~ 씨바-" 해서 초콜릿 언덕으로 바뀌었다고. 키*스 초콜릿 닮았다고. 하여간 미국넘들...ㅡㅡ

날이 흐려 시야가 좋지 못해 아쉬울뿐. 저렇게 둥글둥글한 언덕들이 1268개 움찔움찔 솟아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실 보홀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 초콜릿 언덕 때문.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는 없고, 오직 보홀에서만 볼 수 있는, 보홀만의 신비.

개중에는 이렇게 산처럼 뾰족한 아이들도 있다. 아직 완전한 건기가 아니어서 언덕들 색깔이 녹색이 대부분인데, 11월 이후부터는 풀들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정말 초콜릿 흩뿌려놓은 것 같다고 하니 ><

좋아, 좋아. 예쁘다. 저 동글동글한 것들. 아쉬운 것은, 그냥 보기만 해야 한다는 것. 언덕에 올라갈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화들짝 놀라는 현지인 가이드. 안 돼요, 하면서 난처하게 웃더라. 하긴, 오를 구석이 없어보이기는 하다. 주루룩 미끄러질 듯.

로복강 위에 위태롭게 걸린 흔들다리. 행잉브릿지.
다리보다도 저 강의 풍경이 좋아서 마음에 들었던 곳.

어느 나라에 가나 이런 거 꼭 하나씩 있다. ㅎㅎ
별 거 아니지만 그래도 안 건너면 서운한. 나 또, 요런 휘청휘철 아찔아찔한 것들 상당히 좋아하므로, 볼 것도 없이 냉큼 건너는데, 어라? 생각보다 더 흔들리고 '다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상당히 부실하다.

바닥 좀 보게. 대나무로 대충 얼기설기 엮은 데다 군데군데 크게 빈 곳도 많다. 발 작은 꼬맹이들, 여차 하면 빠지기 좋은.
옆 난간도 그닥 촘촘하지 않아서 발을 삐끗하면 옆으로 쑥 미끄러져 내려갈 수도 있겠어. 이 사람들, 아쌀하네. ㅎ

뭘 저렇게 무서워하며 걷나, 싶었는데 냉큼 건너고 와보니 저 강의 깊이가 무려 12미터! @@ 몰랐으니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폴짝폴짝 방정맞게 못 건넜을 듯.
연암 박지원 선생의 '일야구도하기'와 원효대사의 해골물 일화가 생각나는 대목.

보홀육상투어의 절정인 로복강 투어.
12시쯤 배에 올라 차려진 뷔페로 밥을 먹고, 현지인 악사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유유자적 강을 유람. 강이 참 좋더이다.

저렇게 생긴 배를 타고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강을 구경하는 사람들.

파도 치는 바다가 아니라 강 위를 흐르는 배여서 그런지, 마치 수공예품처럼 대나무로 짠 배의 천장. 필리핀 전통 배의 형식일까나.

배 바닥. 달랑, 대나무 한 겹 있다. ㅎㅎ 역시 아쌀하구마. 대나무 틈사이로 보이는 강물.

산과 강이 똑같이 녹색으로 푸르러 보는 내내 눈과 마음이 함께 시원했던 로복강.

바클라욘 성당(Baclayon Church).
1595년에 지어져 보홀에서는 가장 오래 되고 필리핀 전체를 통틀어 두 번째로 오래된 석조 건물이라고.
어디서 보니 또 필리핀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도 하는데, 확실히 푸르스름하게 돌이끼 낀 내부가 4백년 역사를 말해주더군. 그러나 건물 외부는 언뜻 보기에 성당 같지 않고 그냥 낡은 건물같아서 예쁘지는 않더라.
건물 자체만으로는 로복 교회가 훨씬 교회답게 예쁘더군. 필리핀의 성당들은, 같은 가톨릭이라 해도 유럽의 성당들과는 확연히 느낌이 다르다. 실내장식의 차이겠지. 그 어떤 숭고한 종교라도 토착문화와 현지인들의 미적 감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므로.

혈맹기념비(Blood Compact).
1565년에 보홀의 추장 시카추나와 스페인 초대 총독 레가스피가 두 나라 사이의 우호조약을 맺으면서 각자의 피를 섞어 마셨다고.
아시아인과 서양인이 맺은 최초의 국제 조약으로서 의미가 있어 유적으로 기념하고 있는데, 이거 뭐... 저 잡아먹으러 온 사자하고 친구 먹었다며 좋아하는 양도 아니고... 같은 식민지를 겪은 처지이면서도 필리핀과 우리나라가 스페인과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자못 궁금할 뿐.
아마도 '가톨릭' 때문이 아닐까. 식민지배를 했다고 필리핀을 죽자고 미워하기에는 이미 필리핀을 잠식해버린 종교의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리고 스페인의 식민통치는 일본만큼 가혹하거나 집요하지 않았을지도. 생각난 김에 스페인 통치기의 필리핀에 대해 공부 좀 해봐야겠다.

(필리핀 보홀 / 2011년 10월 / PENTAX K-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