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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짧고 긴 여행 이야기

[익산 유적지] 18년만에 찾은 백제의 정수 <미륵사지> 본문

영혼의양식/볼거리

[익산 유적지] 18년만에 찾은 백제의 정수 <미륵사지>

네루다 2020. 8. 13. 02:00

2001년 여름, 세 여자가 2박 3일 동안 공주-부여-익산을 여행했다.
영험한 계룡산 안개 속을 오르고, 궁남지에서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백마강에서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셨다. 이른바 ‘세 여자의 고주망태 백제 기행’.
마지막에 들른 곳이 바로 미륵사터. 도시를 바꿔 가며 진탕 노느라 기운이 빠진 탓도 있을 테지만, 국사책에서만 보던 미륵사지를 실물 영접한 순간의 그 장엄함에 모두 말문이 막혔더랬다.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데다 시멘트를 덕지덕지 처발라 안타깝게 뒤틀린 돌덩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무너진 돌탑 너머로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 백제의 정신을 목격해버리고 만 세 여자는 약속한다. 10년 뒤 미륵사지에 꼭 다시 오자고.

하지만 늘 그렇듯 10년의 약속은 흐지부지 잊혔고, 그래도 다들 기신기신 살아는 있어 18년(어감 참 좋은!)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세 여자의 삶도 변했다. 변하지 않은 건 죽을 때까지 못 키울 철딱서니와 체신머리.
18년만에 다시 만난 미륵사지, 그 장엄했던 돌탑은 ‘복원’이라는 새 옷을 입었고, 그래서 세 여자는 잠시 당황해 또 다시 말문이 막혔지만… (복원 관련 논란과 비판은 접어 두기로 하자.)

그래도 아름다웠다. 특히 이 시무룩한 얼굴!

정림사 탑에서도 느꼈지만, 백제 탑의 정수는 저 살짝 휘어 올린 모서리가 아닐까. 돌덩이를 어떻게 저렇게…….

돌탑 앞에 선 세 여자. 여자들은 18년을 늙고 돌탑은 새로 태어났네.

서탑보다 먼저 복원해 새로 세운 동탑. 어떤 블로그에서 ‘시체처럼 뽀얀’이란 표현을 썼을 정도로 새하얗고, 너무 새거다.

동탑 안에 앉아 바라본 서탑.


(익산 미륵사지 / 2019년 7월 / 아이폰X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