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과 물, 그리고 지극한 정성과 관심.
꽃 피울 때 필요한 모든 것.
사람도 사랑도 꽃 같아서, 이중 뭐 하나만 빠져도 금세 시들해진다.
아파트 베란다에 어머니가 가꾸시는 사랑초.
사랑초라는 아이가 있다는 것도, 보라색 이파리와 너무도 강렬하게 대비 되는 하얀 꽃을 피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이 강렬함 따위, 제 것이 아니라는 듯 능청 부리는 천연덕스러움에 이끌려 한참을 보다.
봄이라 꽃을 피운 줄 알았더니, 어머니 말씀이, 햇볕만 좋으면 겨울에도 핀단다. 1년 내내 틈만 나면 꽃을 피운단다.
추워 죽겠는데, 겨울에는 꽃도 좀 쉬어주는 게 좋지 않으려나? 겨울에 보면 철 모르는 것 같아 좀 거시기 하겠다 싶었으나, '그건 네 생각이고.'라는 듯 꽃잎이 하늘거렸다. 그렇지 뭐. 인간이 무슨 권리로.
맘대로 피시게나. 잔말 않고 그저 고맙게 봐줄 테니.     

  (20011년 4월 / 전주 아파트 베란다 사랑초 / LG 옵티머스 큐)

전주에 와있으면서 좋은 점 하나는, 간간이 '맛있는 것'을 얻어먹는다는 것이다.
내 돈 안들이고, 내 발로 찾을 필요 없이 편하고 기분 좋게. 
전주 토박이로 40년을 살면서 여기저기 안 다녀본 곳 없는 작은오빠인지라, 
그가 고르는 음식점들은 꽤나 믿을만 하다. 
그래봐야 오빠네 식구나 나나, 엄마나, 입맛이 그리 화려하지 않아서 다니는 곳은
-순두부, 해물칼국수, 추어탕- 같이 늘 소박한 곳들 뿐이지만.
(그 소박한 것들이야말로 진짜배기 맛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남부시장 안에 있는 남문피순대. 일요일 5시쯤 갔는데도, 이미 사람이 바글바글,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이곳 또한 우리나라의 오래된 맛집들의 가장 기본인 '할머니 손맛'을 자랑하고 있었고, 20년인가 30년인가 되었다고.
원조의 포스 팍팍 풍겨주시는 '돈주머니 찬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2대째 아들로 짐작되는 아저씨가 
가게를 장악하고 있었다. (검색해 보니 딸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손님이 너무 많다보니 자리가 좁고 상이 좁고 등등의 여러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맛이 괜찮았다.
피순대 포함된 모듬고기만으로는 '음, 먹을 만하군.' 정도였으나,
뒤이어 나온 국밥이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돼지냄새 하나도 안 나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어쩜 그리 얼큰하고, 시원하고, 얼큰하고, 개운하고, 얼큰시원얼큰개운...할 수 있는지
국물 떠먹는 손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국밥 국물에 속이 하도 풀려, '어제 술이나 진탕 퍼마실걸' 하는 생각이 다 들었을까. 
실컷 먹고 나서 드는 생각. 진작 좀 데려와주지. 전주를 뜨기 전에 꼭 한 번 다시 가리라. 
막걸리를 실컷 퍼마신 뒤라면 더욱 좋으리.   

2011년 4월 / 전주 남부시장 남문피순대 모듬고기 큰 것 12,000원

 

2011년 4월 / 남문피순대 국밥 5,000원(해마다 500원씩 오르는 듯)

 


  

   

2011년 1월 제주 여행. 폭설과 바람 앞에서 난감하게 즐거워하다.
체인이란 걸 처음으로 구경하고, 처음으로 체인을 감고, 언덕을 오르다 체인이 끊어지고, 그래서 공항 근처 렌터카 업체로 다시 가서 체인을 받아오고 하는 등...3박4일 내내 체인을 둘러싼 눈과의 실랑이가 계속된 여행. 
이틀째 밤 제주로 나갔다가 숙소인 서귀포 호텔로 돌아가는 밤, 하필이면 공동묘지 근처에서 체인이 끊어져 차가 오도가도 못하고 계속 헛바퀴를 도는 바람에 '이것은! 제주 귀신들의 장난?' 하며 덜덜 떠는 나를, 특유의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달래주던 욱. 밑에서 덤비는 눈발하고 싸우는 것도 힘든데, 귀신 나온다고 징징거리고 있는 늙은 여친이 얼마나 어이 없었을꼬.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다. 그날, 그 식은땀 나던 경험 이후로 '세상에 이런 귀신이?!'류의, 귀신 비스무레한 것들 나오는 방송이나 이야기 그만 솔깃하기로 결심.    
3박4일 '따뜻한 남쪽 나라 제주'의 따사로운 미소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눈과 바람으로 만난 제주 또한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중에서도 너무도 강렬한 '각인'으로 남은 이곳, 비자림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죽기 살기로 한라산 중턱을 넘다가, 기가 막힌 풍경에 차를 세워 넋을 잃고 한참을 보았다. 눈발 속으로 얼핏 스친 표지판의 이름 '비자림로'만 외워두었을 뿐.
나중에 돌아와서 비자림로를 찾아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새겨둔 곳이었다. 나만 바라본 게 아니었구나, 나만 눈 밝은 게 아니었구나, 하는 허탈한 깨달음. 그리고 새삼 사무치는 아름다움. 눈발에 덮인 상록수들은, 서슬 푸르게 시리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다.
 

 

 


  (2011년 1월 / 제주 비자림로 / LG옵티머스 큐)

2011년 1월. 욱과 함께 한 3박4일 제주 여행. 
제주에 도착하고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흩날리는 눈발이었다. 비행기가 땅에 닿으면서 점점 심해진다 싶더니 공항을 벗어날 무렵에는 제주 제일의 특산품인 '바람'과 손잡고 가히 '돌풍을 동반한 폭설'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에 온 첫날, 숙소로 가기 전에 제일 먼저 들르고 싶었던 곳은 4.3평화공원. 그동안 제주를 네 번 찾았으나 늘 홀로 여행으로 차 없이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던 지라, 선뜻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자동차를 빌리는 여행이니, 그동안 못가본 곳을 마음껏 다녀보리라는 욕심을 세웠고, 덕분에 3박4일 내내 욱이 운전하느라 고생했다. 이 당시 욱이 운전을 시작한 지는 1년6개월이 조금 넘은 터라 생초보라기에는 그렇고, 능숙한 운전자라고 우기기에도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원체 냉정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서울에서도 눈 오고 비 많이 온다 싶으면 절대 운전을 하지 않았는데, 남의 차를 빌린 여행에서 제주의 거대 돌풍 눈발과 맞닥뜨렸으니 그는 속으로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욱이나 나나 체인이란 걸 처음 구경한 상황에서 어찌어찌 끙끙대며 함께 체인을 감고(손가락이 끊어지도록 바람이 찼다!), 조금 가다가 풀리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서서 다시 감고(또 다시 손가락이 끊어지도록 시려웠다), 그렇게 4.3평화공원으로 가기 시작했다. 제주의 교통 표지판에서는 한라산 도로 상황에 맞춰 '체인 없이 승용차 입산 통제' 등등의 정보를 내보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4.3평화공원에 도착했다. 여행자들이 하도 눌러대서 웬만한 터치로는 반응하지 않는, 무디기 짝이 없는 내비게이션을 달래고 윽박질러가며 눈발 날리는 산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4.3평화공원. 눈물이 날 뻔했다. 관람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서울에서 달려온 두 여행자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허락해준 4.3평화공원 직원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제주에 왔습니다. 이제야 들러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를 포함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4.3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은 채 제주의 풍경에만 취해 있진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아프고 허허로웠다.
다음에는 눈이 오지 않는 날을 골라 들르리라. 그래서 위령탑과 추모공원까지 함께 보리라.

 

 

 
(2011년 1월 / 4.3평화공원 / LG옵티머스 큐)

전주 서신동 옛촌막걸리

몇 해만에 다시 찾은 옛촌. 비록 지금은 떠나 있지만 스무 해 가까이 전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 하기 무색하도록 집과 터미널 말고는 아는 데가 없고, 오히려 인터넷을 뒤져보고야 '아 전주에 이런 곳이 있었군. 저런 곳도 있었군.' 하는 주제인지라, '다녀본 술집'이라곤 겨우 두어군데 뿐. 그 중 하나가 바로 서신동 막걸리집 '옛촌'. 

두 번째로 찾은 옛촌은 그새 맞은편에 '늦장사용 분점'을 냈고, 옛촌 분점은 밤 10시면 버스도 끊기고 별들도 잠이 드는 조용한 도시 전주답지 않게 새벽 3시까지 장사를 했다.
막걸리 첫 주전자에 자동으로 따라나오는 기본 안주 3총사. 작은 족발, 닭곰탕, 돼지고기김치찜. 옛촌 위치가 가물가물해 뒤진 인터넷에서 최근 옛촌의 평이 별로였던지라, 처음 찾은 타지 친구 녀석 앞에 내놓기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괜찮았다. 우선 녀석이 밤 9시에 저녁을 먹어 배가 부른 상태였고 서울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희귀 기본 안주' 상차림에 일단 '기분학상' 먹고 들어가주셨던 것. 매운 김치찜과 역시 매콤한 닭곰탕, 작지만 보드라운 족발. 늦게까지 일하다 온 녀석과, 말로만 주당인 내가 과연 막걸리 한 주전자나 비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비웃듯 금세 동나 버렸다. 그리고 두 주전자째 따라나온 애들은 첫상의 '걸판짐'에 비해 충격이 좀 약하지 않은가 싶은, 홍합탕, 꽁치구이, 달걀부침. 아쉽게도 세 번째 상의 안주는 확인하지 못했다. 살다 보면, 그럴 날이 오겠지.

어쨌든 전주에 놀러오는 다른 동네 친구들에게 한 번씩은 데리고 가줄만한 곳으로 찜. 분위기도 헐렁한 듯 푸지게 풀어져서 수다가 술술 잘 풀리는 곳. 하기야 좋은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딘들 술맛이 안 나겠냐만. 그나저나 '다품종 자잘' 안주로 승부한다는 삼천동도 한 번 가봐얄텐데. 유명한 사랑채 등은 전부 밤 11시쯤 문을 닫더라. 밤새 달려줘야 술 마시는 기분 드는 주당들은 어쩌라고. 전주를 뜨기 전에 꼭!

예촌 2호점의 첫주전자 안주들. 맑은 막걸리 한 상 15000원(한 상으로 끝나면 18000원이란다. 술 못먹는 것들은 슬프다.)

  (2011년 3월 / 전주 '옛촌' LG옵티머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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