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의 일정은 대략 살짝 빡셌다.
싼 거 말고는 뭐 하나 좋은 것 없는, 악명 높은 세부퍼시픽을 타고 새벽에 세부 도착.
(물 한 병 공짜로 안 주고, 엔진 소리 엄청 시끄러워 잠 한 숨 자기 힘들고, 비행기가 작다 보니 심지어 승무원들 들어가서 쉴 공간 하나 없더라...ㅜㅜ) 
몇 시간 눈 붙이자고 방값 내기 아까워 예약해둔 마사지샵으로 가 1시간 마사지 받고 두어 시간 자고,
바로 세부 항구로 가 대행으로 미리 사둔 오션젯 페리 타고 보홀로 직행.
필리핀 12박 13일 여정 가운데 첫 일정인 보홀에서의 3박4일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바다'와 원없이 함께 한 시간. 
다음 날 새벽 6시에 해상 투어 출발.
'돌고래 구경/버진 아일랜드 잠깐 내려 사진 찍기/발리카삭 섬 스노클링/점심'으로 이뤄진 해상 투어.
다음에 보홀에 가게 되면 또 해야지, 싶을 정도로 좋았던 보홀의 바다. 과연 명불허전. 

 

새벽 6시에 해상투어 가는데, 스탭 가운데 한 사람이 내내 저러고 앉아 있다.

밑에는 망망대해인데,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뱃전에 걸터앉은 모습이 편하기 그지 없더군. 보는 나 혼자 조마조마할 뿐.

그야말로 바다에서 나고 바다에서 사는 바다사람이니 가능한 일일 테지.

이리저리 자리 옮겨 가며 바다를 살피는 스태프. 보는 나, 여전히 후덜덜하기는 마찬가지.

바다의 파수꾼, 개 망고.

해상투어, 육상투어 등 보홀의 각종 투어를 진행하는 네이버 카페 '보홀자유여행' 운영자의 친구. 
배를 온통 헤집고 다니며 살피는 것을 보니, 이 친구 해상투어 하루이틀 한 것이 아닌 듯.

돌고래가 나타날 것 같으니 저렇게 배 앞으로 나가 바다를 살피고 있다.

돌고래다! 와아...>< 실은...저렇게 가깝게 보지는 못했고, 사진을 확대한 것임.
수족관 말고 진짜 바다에서 뛰노는 자연산(!) 돌고래를 보게 되다니...참으로 감격스러운 순간. 두고 온 남친 생각. ㅜㅜ

또 돌고래다! 와아...@@

버진 아일랜드. 아주 작은 무인도인데, 하루에 한두 번, 이렇게 야트막한 바닷길이 열린다.

배가 섬에 닿자마자 제일 먼저 뛰어내린 망고. 개발자국 찍고, 엊그제 묻어둔 개껌이라도 찾는 건지. ㅎ

아 좋다.

누군가의 발자국

물결 위 내 그림자

바닷길 위로 바다를 걷는 사람들.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하고 있기에 가 보니, 현지인 어부가 잡은 커다란 성게로 한국인 부부와 흥정하고 있더군.
원 헌드레드 페소? 피프티! 어쩌고 하다가 흥정 끝내고 어부가 성게를 손질하는데, 무수한 가시를 칼로 쳐내고...가시를 쳐낼 때마다
피가...헉...차마 몸통 여는 것까지는 못 보고 그냥 돌아서다. 한 점 맛볼 거냐고 묻던데, 사실 성게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그냥...

버진 아일랜드에서 30분 정도 노닥거리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다를 즐기러 발라카삭 섬으로.

보홀에서는 대부분의 해상투어 배들이 발리카삭 섬을 거점으로 스쿠버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긴다.
아마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다이빙 포인트라지.

아 저 바다색...아직 바다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

잠수복.

배 위에서 찍은 바다 밑. 저렇게 빤히 비칠 정도로 맑고 투명한 바다.

스노클링 하다 만난 잠수부가 건네준 불가사리.

잠수복도 안 입고 스노클도 안 달고, 물안경 하나 들고 쓱 사라지더니, 물안경에 니모를 데리고 나타난 현지인 도우미.
왼쪽에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 마냥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다.

아, 저 바다! 여기가 보홀이로구나.  

 

(필리핀 보홀 / 2011년 10월 / PENTAX K-X)

갑니다. 2주 동안.
다녀오는 동안 부디 다들 별일 없기를.

소설 쓰는 후배뇬이 난데없이 파주영어마을에서 알바를 시작했다기에, 얼굴이나 볼겸 슬렁슬렁 파주영어마을이라는 곳엘 갔다.
영어마을이라는 곳이 전국에 몇 개 있고, 그나마 파주에 있는 곳이 규모도 크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만 얼핏 들었을 뿐, 당췌 어떻게 생겨먹인 곳인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는데(알고 싶지도 않았는데)...도착하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본뜬 것으로 짐작되는 거대한 고인돌(그러나 스치로폼인 것이 너무나도 잘 보여서...'안습'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구나, 하고 처음 느꼈 ;;)이 자리한 정문에서부터 허걱- 소리 나오더니,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정말로 황당하고 어이없는...그러면서도 굉장히 그럴듯하게 지어진...암튼...뭐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하고 기묘하고 오묘하고 야릇한 느낌 투성이었다.
파주 영어마을은 말 그대로 실제 마을이더라. 일단 건물이 여럿 있고, 골목이 있고 큰길이 있다. 뿐인가? 시청도 있고 커다란 콘서트홀도 있다. 가로수도 있고 레일 바이크도 다닌다. 그런데...이 모든 것들을 둘려보면서 왜이렇게 심란하던지...파주 영어마을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딱 하나였다. 키치.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감탄사 하나. "여기는...키치의 세계로구나! 키치의 절정이로구나!!" 키치의 개념이나 뜻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마을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마나! 이것은, 바로 바로 그 말로만 듣던 키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키치 (kicsh)
: 독일어. ‘저속한 미술품’ ‘사이비 그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이 말은 19세기말 독일에서 처음 생겨났으며 당시 급격한 산업화와 교통통신의 발달, 대중문화의 탄생 등으로 그림에 대한 소유욕구가 확산된 데서 비롯됐다. -다음 오픈 백과

* 그럴싸한 가짜, 진짜인척 하고픈 싸구려 욕망의 발현, '진짜'를 소유하고 싶지만 워낙 비싸고 귀한 탓에 그 비스무레한 가짜로 만족하는 중산층의 싸구려 욕망이 만들어낸...암튼지간에 가짜, 사이비, 그럴싸한 복제...등등의 개념인 키치.

파주 영어마을을 보는 순간 내 온 몸을 관통하면서 흐른 '키치'. 키치가 무엇인가 알고 싶거든 파주 영어마을로 가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다.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의 건물들을 고스란히 베껴놓은 '형식'과, 우리나라를 관통하고 있는 미친 영어 광풍의 '내용'이 만나 이룬 완벽한 조합. 그러니 영어마을이야말로 멀리 갈 것 없는 키치의 산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영어마을 입구. 저 문을 들어가면 희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시계탑 광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Market Street, 즉 상점가라고는 하는데...

 

학교 앞을 지나는 레일 자동차.

 

건물 앞.

 

영국 어느 작은 도시 같은 거리 분위기?

 

보자마자 풋- 현웃 터진 시청.

 

런던에 있는 '로얄 앨버트홀'을 본떠 만들었다는 콘서트홀.

 

콘서트홀 정면. 흠...요렇게 보니 정말 외국의 어느 건물이라고 해도 믿겠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건물들이 모두 외국에서 비싼 재료들을 들여와 지은 것들이란다.

진짜 같은 가짜(짝퉁)를 가져서라도 진짜와 비슷해지고픈 우리식 싸구려 열망과 전시행정이 만나 이룬 풍경.
  

(파주 영어마을 / 2011년 9월 / LG 옵티머스 큐)

보몽 쉬르 우아즈를 보고 달려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빈센트 반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지냈던 곳으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파리에서 기차 타고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기차역 지하보도.

어머나 예뻐라. 감탄이 절로 나왔던 지하보도. 해바라기와 오베르 교회, 그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까지...

마을 곳곳에 이런 표시들을 해두었다. 고흐 그림 속 건물과 실제 건물의 비교. 오베르 시청이었던가.

고흐가 머물던 다락방은 이 건물 안에 있다. 지금은 고흐 기념관 겸 술집?

기념관 뒷마당. 와인병들. 

고흐의 방. 작고 초라하고 쓸쓸해서 더욱 마음에 오래 남은 의자.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 / 2009년 6월 / PENTAX K100D)

세 번째 프랑스행이었던 2009년. 드디어 파리를 벗어나 다른 동네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멀리는 못 가고 파리에서 기차로 한 시간 안팎의 작은 마을들.
베르사유를 봤으니, 그래 이제 고흐를 만나러 가자! 각오 단단히 하고 나섰다.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어라? 그런데 기차 시간! 고흐 보러 가려면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 기차를 타고 페르상 보몽(Persan Beaumont) 역에서 내린 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 가는 기차를 갈아 타야 하는데, 그 갈아타는 시간까지 몇 시간이나 남아버린 것. 어쩔까 하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페르상 보몽 역 근처의 마을을 하릴없이 돌아보기로 했다. 물론 몰랐다. 그 마을 이름이 뭔지, 뭐가 유명한지.
그런데 이게 웬떡?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았네! 이 마을 이름은 보몽 쉬르 우아즈(Beaumont sur Oise). '우아즈 강 위의 보몽'이란 뜻으로, 강가에 자리잡은 작고 어여쁜 마을이었다. 

페르상 보몽 역.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려면 이 역에서 내려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역을 그저 '갈아타는' 곳으로 이용할 뿐이다.

마을의 도로. 우리와는 참 많이 다른 표지판. 나는 유독 이런 작은 것들을 통해 외국을 실감하곤 하다.
화장실 세면기의 모양, 도로 표지판에 쓰인 글씨, 공원 휴지통의 색깔 같은 것들.

투박하고 소박한 호텔. 그리고 너무도 파란 하늘.

언덕 위에 자리한 생 로랑 교회(Église Saint Laurent).

아무런 정보도 없어서 그냥 막연히 오래 된 교회겠거니, 모양이 나름 특이하고, 웅장하고 멋지구리, 하는 생각만 했는데

뒤에 찾아보니 엄청난 건물이더군. 고딕과 르네상스의 조화라니...@@

 

(생 로랑 교회 : 12세기에 처음 설립되었으나 이후 네 차례 대규모 보수 공사를 겪으면서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되었다. 왼쪽엔 삼각형의 지붕과 아치형의 입구를 가진 고딕 양식의 교회 예배당이, 오른쪽에는 이보다 두 배 정도 높은

르네상스 양식의 거대한 사각 종탑이 서있다. 우측에 있는 이 4층짜리 종탑은 16세기에 추가로 지어진 것이다. 상층이 가장 길며 꼭대기에는 거대한 돔이 설치되어 있다. 한쪽 층의 벽면마다 두 개의 기다란 창문이 나있다. 교회 정면에 있는 또 다른 원뿔형의 작은 종탑은 1130년에서부터 1140년까지의 초창기 공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후진에 설치된 성가대석은 12세기 중반에 지어졌다.

13세기 완성된 정면은 입구를 중심으로 양쪽이 거의 동일한 모양과 개수의 창문과 장식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예배당과 종탑이 전혀 다른 시대의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으나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이어져 있는 것도 특징이다. 
[출처] [Saint Laurent church of Beaumont-sur-Oise ] 네이버 백과사전)

성당 안. 아마도 무슨 행사를 앞둔 모양이었다. 동네 사람들 모여 성가연습을 하는데, 노래 솜씨들이 썩 좋지는 않았다. ㅎ 
앞에 가서 성당 구석구석을 좀 더 보고 싶었으나 방해하기 싫어 잠시 앉았다가 나왔네.

선거 포스터. 불어라곤 알파벳도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얼추 비슷하게 때려맞춰보자니 아마도 생태주의자 동맹인 듯 싶은데, 
앞쪽 포스터 가운데 아저씨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레게머리에 개를 안고 있다!

 

아이쿠야, 예뻐라. 이것이 그 우아즈 강?

 

요런 강가 풍경이야말로, 유럽을 유럽답게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 세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그리고 백조들.

어린 시절, '백조의 호수'를 알게 된 후 백조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고, 볼 때마다 신기해 언제나 넋을 잃고 보곤 한다. 

 

어라? 그런데...우아하지만은 않구나. 백조. 대가리를 물속에 쳐박고 궁둥이를 하늘로 쳐든 채 버둥거리며 밥먹는 모습. 확 깼네.  

 

(프랑스 보몽 쉬르 우아즈 / 2009년 6월 / PENTAX K100D)

 


가끔씩 내 현재 시간과 공간이 실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울도, 전주도, 대한민국 그 어느 곳도 딱 맞는 내 공간 내 시간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한창 일을 하고 있다가도, 바삐 거리를 걷다가도, 누군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그 '어긋남'의 느낌은 난데없이 찾아오곤 한다. 마치 한참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럴 때면 멍하게 둘러보며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 하는데, 그 물음 뒤에 따르는 대답은 늘 똑같다. '여기가 아닌데, 지금이 아닌데...'
이런 상태를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 단순한 멍때림을 넘어 신나게 시간여행 하다 우주의 시간축이 뒤틀려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내려버린 것 같은 느낌? 어디라고 콕 찍어 말할 수는 없으면서도 언제나 그곳이 그리웠다. 그저 막연히 '여기/지금' 아닌 '다른 곳/다른 시간'이 애타게 그리워 몸이 달아오르곤 했다. 어릴 때부터였다. 고질적인 현실도피 내지는 구제불능의 망상/공상병일 거라고 치부하며 살았다. 그러다 아주 가끔, 뒤틀린 우주의 시간축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찰나의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아, 여기로구나!' 하는 깨달음.  
첫 경험은 지리산에서였다. 스무 살 때 처음 올랐던 지리산에 첫발을 딛는 순간 온몸을 지르르 관통하던 느낌. 익숙함 같기도 하고 편안함 같기도 한 것이, 어찌나 슬프고 애달프고 서럽던지. 하여 나는 예전(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에 지리산 빨치산이었을(일) 거라 믿게 되었다. 가끔씩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떠올리며 우주의 뒤틀린 시간축을 되돌릴 순간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6년 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리산과는 전혀 다른 익숙함과 편안함. 지리산에서 몸을 관통했던 느낌이 삶과 죽음의 긴박한 긴장감이었다면, 만델라에서 맛본 익숙함은, 평화롭게 늘어진 나른함 같은 것. 찾았다. '이탈리아에서 올리브나무를 돌보며 한가롭게 짱박힌 또 다른 나'를. 

이탈리아 만델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만델라 아닌, 로마에서 기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 만델라(Mandela). 돌로 만든 집들과 올리브 나무와 야트막한 산과 파란 하늘뿐인 이곳에서(아, 축구장도 하나 있었지) 2008년 1월부터 2월까지 한 달을 살았다. 커다란 성의 한귀퉁이 2층짜리 돌집에 묵었는데, 장작이 수북이 쌓인 현관, 벽난로가 자리한 거실, 묵직한 돌계단과 나무로 덧창을 댄 2층 발코니까지...영화에서만 보던 그 이국적인 풍경에 홀딱 반한 것도 잠시, 한 달 동안 무시무시한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다. 돌로 지은 건물이 내뿜는 겨울의 한기란 그야말로 무시무시해서, 낮에도 전기담요 속에서 비비적거리곤 했다.
그럼에도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야말로 행복이 딱 코앞에 와 있어서,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릴 새도 없었던 한 달. 아침 일찍 일어나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냄비에 밥을 해먹고, 올리브나무와 야트막한 숲을 한 시간 정도 헤집고 돌아와 따뜻한 발코니에 앉아 마을을 내다보던 시간들. 참 춥고 심심하고 하릴없으면서도 몹시 아슬아슬한 시간(로마에서 지갑을 도둑맞아 그야말로 여행 경비가 간당간당했다.). 돌아온지 3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몹시 생생하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그곳. 지금도 가끔 잠에서 깨 창을 열면 골짜기 위 마을로 올라가는 돌길이 보일 것만 같아 눈물이 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부디 안녕히.     

집 맞은편의 작은 창고. 창고라 생각했으나 어쩌면 집일지도 모르겠다. 

만델라에서 소풍 가듯 찾아갔던 작은 마을 비코바로(Vicovaro). 빨래 널린 돌벽.

또 하나의 작은 마을 수비아코(Subiaco). 예쁜 스쿠터.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들 / 2008년 1월 / PENTAX K100D)

    

먼저 간 아들이 남긴 부탁을 지키며 이 땅 모든 노동하는 자들의 손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이,
이소선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타이완을 세 번 갔는데, 공교롭게도 세 번 다 출장이었다.
한 번은 가오슝 출장, 한 번은 유럽 출장 중 타이베이 경유, 또 한 번은 타이베이 출장.
다행히 그 출장들이 모두 '여행'이 주가 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많이 보고, 다니고, 먹고, 즐길 수가 있었고, 타이완은 그래서 내게 참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뿌리가 같다지만 중국 본토보다 덜 번잡스럽고 훨씬 덜 그악스러운 느낌? 
미식 천국 가오슝에서의 어마어마한 맛기행 덕에 1주일만에 3kg이 불기도 했고
타이베이에서는 예약한 숙소 이름을 잘못 알아서 택시 타고 밤거리를 헤매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이 나라 별로라거나, 위험하다거나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나라가 작다 보니 웬만큼 먼 여행지도 2, 3시간 안에 움직일 수 있고
물가 싸고 음식 맛있고, 한자 문화권이라 표지판 얼추 셈해 보며 다니기도 좋고.
그만큼 타이완은 '여자 혼자' 떠나기에 참 좋은 여행지라 할 수 있을 듯.
그 중에서도 자주 생각나는 곳, 지우펀.
 

 

  관광지라기보단, 타이완 사람들이 골목에서 그냥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소박한 일상의 느낌으로 더욱 좋았던 곳.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정. 어쩌면 지우펀이 오래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오랜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일지도. 다시 한 번, 함께 갈 날이 올까.   
                                

(타이완 지우펀 / 2008년 6월 / PENTAX K100D-인화 사진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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